[장순휘 박사의 안보칼럼]6·25전쟁은 김일성이 저지른 전쟁범죄로 책임 물어야

[장순휘 박사의 안보칼럼]6·25전쟁은 김일성이 저지른 전쟁범죄로 책임 물어야

  • 기자명 장순휘 정치학박사
  • 입력 2020.06.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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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에서 전국구국동지연합회 관계자들이 6.25 70주년 안보 결의 집회를 하고 있다.

[더퍼블릭 = 장순휘 정치학박사] 올해로 6.25전쟁 제70주년을 맞았다. 6.25전쟁은 그 전쟁의 의미가 남다른 것은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며 싸운 민족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 대한 전쟁사적 담론이 아니라 전쟁범죄적 차원의 논의를 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전후 세대가 우리 국가사회의 주역이 된 지금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armistice)으로서 '잊혀져가는 전쟁(Forgotten War)'아니라 '기억해야할 전쟁(Remembered War)'으로 미래 평화통일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우선 6.25전쟁의 발발 원인을 살펴봐야한다. 발발원인은 1950년 6월 25일 04시 북한인민군이 38도선의 전 전선에서 전면기습남침으로 국군을 공격한 것이다. 그 후 6월 28일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이 되었고, 대전으로 천도가 되면서 신생국 3년차의 대한민국이 패망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신속한 전황 판단과 미 극동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지시를 하여 미 해공군의 즉각적인 지원과 후속 유엔안보리의 결의 제83호에 의거하여 7월 유엔군의 전격적인 참전으로 대한민국의 구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129일 간의 혈전을 끝으로 1953년 7월 27일 승패가 없는 정전협정(armistice)으로 대치하고 있다.

전쟁발발 과정에서 누가 이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것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자는 가짜 김일성으로 행세했던 김성주라는 자였고, 바로 그가 전쟁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반복되는 6.25전쟁 기념식은 피해사실에 대한 추억이야기와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한다는 상투적인 평화담론에 초점이 맞춰진 천편일률적인 기념식으로 본말이 주도되고, 주객이 전도된 패배주의적 기념식이 일상화 되어버렸다.

분명한 것은 6.25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범죄차원의 형사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률적으로 책임자가 있는 것이고, 범죄행위를 명확히 밝혀서 반드시 법정에 세우고, 생사를 불문하고 사후에라도 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전쟁법에도 명시된 후속조치인 것이다.

따라서 6.25전쟁범죄는 김일성이 주범이고, 모택동이가 공범이고, 스탈린이 교사범으로 3자가 공모하여 저지른 동족에 대한 천인공노할 범죄행위가 맞다. 특히 주범 김일성은 33세의 어린 나이에 소련군의 후광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가 되자마자 조만식 선생 등 민족지도자를 숙청했다.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통한 통일국가 건국을 거부하고 북한 공산정권 수립한 후에 ‘민족해방’이라는 개인적 망상에 사로잡혀 평화통일보다는 무력수단으로 한반도를 공산화하고자 했었다고 전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유성철이 증언하고 있다.

김일성 자신도 1946년 6월에 군간부들에게 남조선 침공을 위한 군사력 증강에 힘을 쏟겠다는 군사력 건설사업 중점 발언을 했다고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기록되어있다.

김일성은 이러한 남침전쟁을 통한 한반도무력점령을 위하여 1949년 2월 22일부터 3월 14일까지 1차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을 만나서 군사원조를 간청하고, 다시 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까지 2차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을 설득하여 ‘민족해방전쟁’이라는 감언이설로 ‘조건부 동의’와 군사원조 및 전쟁지도까지 받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김성호의 ‘조선전쟁의 비밀과 진실’에 상세히 증언되어있다.

이러한 여러 역사적 증언에서 6.25전쟁의 전쟁범죄자는 김일성이 맞다.

스탈린도 중공 모택동의 동의한다면 남침전쟁을 승인한다는 식으로 사주하였으며, 김일성에게 철저한 군부대 창설과 위장평화전술 및 속전속결로 끝내서 미군이 참전할 시간을 주지말라는 구체적인 공모에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교사죄를 물어야한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후원을 얻자 바로 1950년 5월 15일 모택동에게 달려가서 중공군의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회담에서 모택동은 미군이 참전하면 중공군을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속전속결의 중요성과 지구전의 불리함 그리고 중공군 소속 한인 3개 사단(5~6만명)을 북한군에 편입하도록 병력을 지원해 주는 전쟁지도를 해주었으니 6.25전쟁의 공범으로 그도 책임을 물어야한다.

이처럼 6.25전쟁은 전쟁범죄자 3명이 공모하여 저지른 민족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서 아직도 그 전쟁의 상처로 온 민족이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매년 기념식의 숫자만큼 비례해서 사라져가는 전쟁피해 세대들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분명한 책임자 처벌과 보상 그리고 사과를 받고서 평화를 거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구걸하는 비겁한 대북정책에 매인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재강조하거니와 해방 후 위장평화통일을 내세워 신생 대한민국을 기만하고, 중소의 군사지원을 얻어내서 동족에게 총칼을 겨누고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하지 않을까?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장순휘 정치학박사 webmaster@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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