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박사의 안보칼럼]국군 제6사단의 춘천대첩은 軍·警·學·民의 제2의 행주대첩

[장순휘 박사의 안보칼럼]국군 제6사단의 춘천대첩은 軍·警·學·民의 제2의 행주대첩

  • 기자명 장순휘 정치학박사
  • 입력 2020.07.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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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휘 정치학 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

[더퍼블릭 = 장순휘 정치학박사] 손자는 손자병법 제1편 시계(始計)에서 “병자(兵者), 국지대사(國之大事), 사생지지(死生之地). 존망지도(存亡之道), 불가불찰야(不可不察也)”라하여 “전쟁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다.

국민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의 길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전쟁의 수단으로 ‘전투’라는 것은 장수(將帥)가 중심이 되어 병력을 지휘하여 적과의 승패를 가르는 것으로 때로는 국가존망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활동이다.

‘춘천전투’에 대하여 굴든(Joseph C. Goulden)은 저서 『Korea : The untold story of the war』에서 “한국의 전 전선 가운데 약 6천명에 불과한 한국군 1개 사단(제6사단)만이 유일하게 승리했다”고 기술할 정도로 그 전승의 의미가 단순한 전승이 아니라 ‘구국의 대승’으로서 6.25전쟁을 거쳐 유일무이한 한국군의 ‘대첩(大捷)’이라고 할 것이다.

이 위대한 구국(救國)의 춘천대첩(春川大捷)은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춘천을 방어한 국군 제6사단의 불멸의 전승으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2사단의 공격을 완벽하게 저지했던 전승이다.

당시 북한군 제2군단은 조공(助攻)으로 개전 25일 춘천을 점령하고 홍천-가평을 거쳐 서울 동남쪽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서울남부와 수원방면으로 대우회포위기동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T-34전차와 SU-76자주포를 앞세우고 남침하던 북한군 제2사단으로서는 국군 제6사단의 강력하고 조직적인 저항에 충격과 혼란에 빠져버린 패전이었다.

춘천대첩이 6.25전쟁사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쉽게도 전후 50년이 지난 2000년도 6월, 그 당시에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아닐 수 없었는데 그후 '잊혀진 전승(Forgotten Victory)'으로 또 외면되었다가 전후 70년이 지난 올해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이 천우신조라고 할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춘천시와 춘천시민을 위하여 춘천대첩의 그 전쟁사적 가치와 안보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발굴하면서 춘천이 위대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첫째, 춘천대첩은 개전 초 유일한 국군의 승리였으며, 북한군의 남침 기동계획의 차질을 빚게 만든 대승이었다.

6월 25일 04시에 공격준비사격으로 춘천정면지역에도 무수한 포탄이 떨어졌으나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은 침착하게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T-34전차와 SU-76자주포의 출현에 겁을 먹고 후퇴하던 중 옥산포로 접근하는 적 SU-76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첫 전과를 올렸으며, 이 전과가 적 T-34전차와 SU-76자주포의 공포심을 제거하고 장병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리고 봉의산 사단지휘소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김종오 사단장은 제16포병대대 105mm 견인포를 집중운용하여 소양강으로 접근하는 북한군을 대량살상하는 전과를 올렸고 ‘춘천사수(春川死守)’를 확신하게 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돈좌상황에 빠지면서 제12사단의 2개 연대를 증원하여 소양강도하공격을 하였으나 국군 제6사단은 결사적으로 저지하였다. 그러다가 육군본부의 명령으로 27일 오후에 자발적인 철수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원창고개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적의 진출을 저지하였고, 29일 오후에 전투력을 보호하면서 홍천방면으로 철수한 구국의 5일간의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부대로 ‘춘천바위’라는 애칭을 받았다.

북한군의 ‘선제타격계획’의 제1단계 전투는 뜻밖에도 춘천정면의 국군 제6사단의 죽음을 무릅쓴 춘천대첩으로 인하여 근본적인 차질과 작전상 혼선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5일간의 전투는 28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과 협조된 공격에 차질을 주었고, 국군 지휘부에 패주하는 국군장병을 수습하여 한강방어선 전투를 준비할 시간을 주었으며, 29일 맥아더 장군의 한강방어선 시찰이 가능하도록 한 그야말로 구국의 전승 춘천대첩이었다.

둘째, 부족한 병력과 열악한 무기와 장비로 제6사단 장병과 춘천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 승전보는 전군에 자신감과 투혼을 주었던 첫 승리였다.

개전 전날 24일에 비상경계령이 해제되면서 전군적으로 병력의 1/3정도가 외출·외박·휴가로 출타한 점을 고려한다면 25일 국군 제6사단의 병력은 약 6,000여명에 불과하였으며, 반면에 북한군 제2군단의 병력은 약 38,000여명으로 1:6의 절대열세였다.

장비면에서도 아군은 105mm 곡사포 12문(4문은 고장정비)과 57mm 대전차포 12문 정도였고, 북한군은 T-34 전차 30대와 SU-76 자주포 36문 및 122mm 곡사포 36문으로 1:15의 압도적인 우세한 전투력으로 공격하였다.

한마디로 전투자체가 불가한 전력수준이었으나 국군 제6사단 장병은 춘천사수를 위하여 일찍이 5월 하순경 춘천시민과 학도호국단의 자발적 참여로 소양강변의 진지공사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따라서 춘천대첩의 숭리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춘천시민과 군장병 그리고 경찰의 단결된 힘에서 나온 위대한 첫 승리였으며, 당시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에서 연전연패로 패퇴하기에 정신없었던 국군에게 자신감과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투혼을 불러 일으켜준 첫 승전보였다.

셋째, 춘천시민이 함께 싸운 軍·警·學·民의 제2의 행주대첩으로 역사적인 전승이었다.

당시 병력이 부족하여 실탄과 포탄을 공급하기에도 어려웠으나 춘천학도호국단 학생들과 춘천시민들이 손으로, 지게로 포탄을 운반해주고, 춘천방직공장 여직공들이 주먹밥을 날아주고,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눈물겨운 전투지원으로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의 사기와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것이다.

통상 전쟁이 시작되면 일반적인 민간인들은 남부여대(男負女戴)로 피난을 가기도 바쁜데 춘천시민들은 고향을 지키겠다는 용감한 시민정신과 애국심을 발휘하여 총포탄이 쏟아지는 전투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국군을 지원했다는 것은 놀라운 시민정신이 아닐 수 없다.

6.25전쟁기간 중 강제된 동원으로 시민이 참전한 것은 있으나 개전초 자발적으로 전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군을 지원한 사례는 춘천시민뿐이라는 점에서도 위대한 시민들이다. 그 당시 춘천시민들이 남긴 드높은 명예와 자긍심을 시민정신으로 계승되고 선양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다.

춘천시민의 애향심과 애국심 그리고 반공정신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매우 특이한 시민분위기로서 구한말 의병운동의 정신적 뿌리가 깊은 춘천의병정신에서 발원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강원도 경찰병력도 전투에 참가하여 소양1교 측방에서 근화동 가래모기지역을 책임지역으로 배치되어 적의 도하를 저지한 최초의 군경합동작전의 승리한 전투로도 기록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춘천시는 6.25전쟁에서 유일무이한 첫 승리를 시민들이 자발적 참여로 만든 춘천대첩의 도시이며, 나라를 구한 위대한 도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시는 이러한 역사적인 안보자산과 전사적인 호국가치를 학술적으로 재평가하고,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시민의 명예와 긍지를 브랜드화하는데 소극적인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은 춘천시, 춘천시의회, 강원대학교, 제2군단사령부 및 제6사단이 TF를 발족하여 정기적인 ‘학술세미나’의 개최로 춘천대첩을 재조명하고, ‘춘천대첩선양사업단’을 구성하여 ‘춘천대첩박물관’을 세우고 체계적인 기획사업을 추진해야한다.

그리고 문화예술적 사업으로도 발전시켜서 춘천대첩을 ‘영화화’하여 전국민적으로 존경받는 도시로 차별화가 가능하다. 특히 춘천대첩을 ‘안보브랜드화’해서 전적지관광으로 개발이 가능하고, 육사와 육대 및 각종 간부과정의 ‘춘천대첩 현지실습’을 과정에 반영하여 춘천시를 방문하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무진무궁한 춘천대첩의 전쟁사적 가치와 안보적 함의를 왜 개발하지 않는지 위대한 춘천시민에게 묻고 싶다.

더퍼블릭 / 장순휘 정치학박사 webmaster@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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