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기업과 검증 없는 계약…한국전력이 30억원 증발시킨 과정

김수영 기자 / 기사승인 : 2021-02-22 14: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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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김수영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부분자본잠식에 빠진 업체의 재무상태를 ‘우수’로 평가하고, 이 회사 임원이 다른 업체와 공모해 견적금액을 부풀렸음에도 제대로 된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아 협력업체가 연구개발비용 수십억원을 과다산정하는 등 부실계약을 맺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심지어 이 회사는 설립된 지 반년 만에 임직원 급여가 밀릴 정도로 심각한 재무상태에 놓여있었음에도 한전의 자의적 평가결과에 따라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심지어 한전이 요구하는 수준의 기술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2016년 5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진행한 차세대 이산화탄소 분리막 상용기술 개발을 위해 대구 소재의 A업체와 기술협약을 체결하고 협력기관으로 선정했다.

이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를 32.5% 감축한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었다.

한전은 5개 발전자회사가 소유 중인 화력발전소 180여개를 통해 2억222만톤(2019년 기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만 7천95억원(톤당 2만9천원)에 달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활용·저장하는 CCUS(Carbon Capture, Un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개발에 골몰해오던 한전은 분리막에 의한 CO2 포집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A사와 협약을 체결, 연구개발(R&D) 비용으로 187억원을 투자했다.

 

아들까지 동원된 뻥튀기 견적에도 협력업체 선정

2016년 A사는 한전과 공동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R&D비용 130억원(현금 112억원, 현물18억원)을 요청했고, 한전 측은 총 179억5천300만원의 비용을 산정해 확정했다.

A사는 현금사업비 112억원 중 직접비에 해당되는 37개 품목 중 분리막 제조기를 포함한 6개 품목은 특정업체만 제작할 수 있다며 각각 1개 업체의 견적서만 제출했다.

하지만 A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한 분리막 제조업체(서울 금천구 소재) B사는 레이저 용접기를 주로 판매하는 업체로, A사 측으로 납품한 분리막 제조기는 독일에서 수입한 것으로 확인됐고, 유일하게 실리콘 믹싱롤러를 제조하는 것으로 견적서를 제출한 대구 소재 C사 역시 자동차 부품을 생산·판매하는 업체였으며, 해당 설비는 다른 업체들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됐다.

A업체 기술전무로 있던 a씨는 자신이 개발한 분리막 장치 개발비용 등을 보전하기 위해 본인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던 B업체와 공모해 분리막 제조기 등 3개 품목의 견적금액을 3천만원 이상 부풀렸고, 이 과정에서 A사 대리로 재직 중이던 a씨의 아들은 견적서 위조에 가담하고 한전으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정산받아 B사의 법인계좌로 입금하기도 했다.

 

▲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앞에서 시민단체 청소년기후행동과 정치하는엄마들의 회원들이 한전의 베트남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베트남에 새로 짓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대규모 온실가스를 배출함으로써 기후위기를 앞당긴다고 주장, 발전소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10.5 (사진=연합뉴스)

뿐만 아니라 A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기재된 참여연구원들의 실제 담당업무는 기술연구와는 관련 없는 홍보, 회계, 인력 및 기계관리 등이었으며 심지어 채용된 적도 없는 사람이 연구원으로 기재되기도 했다. 이는 전형적인 비용 편취의 형태다.

한전 내부규정 및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 따르면 공동 연구과제를 수행할 경우 한전은 직접비가 실소요금액으로 산정됐는지 근거를 확인하고, 연구개발사업계획서에 명시된 연구과제를 실제 수행할 자격 등이 있는지를 확인한 뒤 연구개발비로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한전 측은 A사에서 제출한 견적내용과 근거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낭비된 예산만 해도 약 36억원에 달한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한전) 전력연구원은 A사가 견적서를 제출한 6개 품목의 견적금액이 적정한지와 복수견적이 가능한지를 확인하지 않았고, 견적서를 제출하지 않은 31개 품목에 대한 산출근거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술력 부족에 연구원은 허위, 회사는 자본잠식

한전이 공동연구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협력기관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연구기관 선정위원회를 열어 대상 업체의 재무상태와 사업수행능력 등을 평가해 평가등급 ‘우수’(80점)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한전 측은 개시대차대조표 심사 결과 부채가 없고, 본사 차원에서 추진하는 과제라는 사유 등으로 A사의 재무상태를 ‘우수’로 평가했다.

개시대차대조표는 법인 설립(사업 개시시점) 당시의 자금현황만 기재된 대차대조표로, 구체적인 사업운영 현황 등이 제표 상에 전혀 반영되지 않아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다.

A사가 한전 협력업체로 선정된 2016년, 아직 설립(2015년 3월13일)된지 1년도 되지 않아 개시대차대조표를 심의자료로 제출했는데, A사는 설립 반년여 만인 2015년 말 기준 이미 2억원의 유동부채를 지고 있었다. 또한 자본금도 1억원에서 7천900만원으로 부분잠식에 빠지며 임직원 급여마저 지급하지 못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사 측의 기술력 자체도 의심할만한 수준이었지만 한전은 이를 묵인하고 협력기관으로 선정했다.

정부와 한전의 분리막 장치 CO2포집비용은 20달러 이하였는데, A사는 자사의 분리막을 이용한 CO2포집비용이 25달러(t/CO2) 이하로, 현존하는 기술 중 유일하게 저비용으로 CO2대량포집이 가능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2015년 6~10월 한전 측이 A사의 분리막 장치를 검증한 결과, CO2포집비용은 79달러(tCO2)인데다가 CO2회수율도 16.2%에 불과해 정부의 목표치에 크게 미달했다. 그럼에도 한전 측은 이와 같은 검증결과를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하지 않은 채 A사의 기술능력 및 전문이력 보유 상태를 ‘보통’(20점 중 12.8점)으로 평가했다.

턱없이 모자라는 기술력과 재무상황 속에서도 A가 협력기관으로 선정된 건 한전 측의 관리 및 검증부실 책임이 크다.

감사원은 김종갑 한전 사장에게 관련 직원 문책을 요구하는 한편, R&D비용 편취 및 사기혐의 등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한전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협력기관 선정을 위한 평가 등을 관련 규정에 따라 철저히 하고 심의자료에 기재된 내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도록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퍼블릭 / 김수영 기자 newspublic@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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