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절대암흑속, 동굴, 동굴탐험가들이 간!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절대암흑속, 동굴, 동굴탐험가들이 간!다”

  • 기자명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입력 2022.02.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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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동굴탐험연구회는 국내 최초의 탐험단체로서 1970년에 이해풍 교수를 지도 교수로 김진동(미국거주), 윤희중,이주광, 신승훈, 장화자,임재호 등이 발족

·윤명철 명예교수, 역사학자에게 탐험이란?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이다”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절대암흑속, 동굴, 동굴탐험가들이 간!다” (22년 2월 12일자)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을 통해, 역사학자에게 탐험이란? 내용의 “절대암흑속, 동굴, 동굴탐험가들이 간!다”를 업데이트 했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2월 12일자 주요 내용]

한국사회에서는 1970년대를 바라보면서 본격적인 암벽등반과 함께 한국적 히말라야 시대가 도래해서 등산 또는 등반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기술력을 갖추고 난이도가 높은 탐험이라는 행위는 동국대 동굴탐험부가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탐험이라는 이름을 내건 해외 원정대는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시도한 북극탐험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필자가 1982년에 대한해협 뗏목탐험을 시도한 이후에 동아시아 해양을 무대로 탐험을 했다.

탐험은 등산, 동굴탐험, 해양탐험, 수중탐험 등을 ‘자연탐험’으로 구분하고, 나아가 ‘사회탐험’ ‘인간탐험’ 등으로 구분했다.

탐험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탐험은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역사는 탐험의 역사이다. 인간은 새 것을 싫어하는 본성(네오포비아)이 있다. 존재와 인식 사이, 또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늘 괴리감과 갈등이 생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실패확률이 높은 도전을 행하는 행위가 탐험이고, 이러한 과정이 역사이다.

둘째, 탐험은 통념을 극복하고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행위이다. 다수의 인간들은 사회통념을 만들어내고, 이 통념은 인간의 인식과 행위를 제약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통념에 굴복하거나 안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희생을 무릅쓰고 깨뜨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탐험은 난이도가 극심해서 한계상황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존재의 파기를 무릅쓰고, 육체적 정신적인 난이도를 극복하는 것이 탐험이다.

셋째, 탐험은 목적 지향성이 있고, 성과를 사회에 환원해야한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산을 대하는 마음, 탐험행위들이 변질되었다. 현대문명은 인간이 사유하는 시간과 공간을 박탈하고, 자연과 생체험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과 투쟁할 것을 요구하면서 탐욕의 화신과 소비기계로 만들어간다. 탐험인이나 등산인들은 자연을, 산을 제자리로 되돌려놓은 일들에 참여했으면 한다.

탐험은 통념과 일상을 벗어나 한계상황이나 극한상황을 체험하면서 극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많은 특별한 체험을 할 뿐 아니라 자연의 숨결 자연의 신비 자연만의 비밀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필자의 ‘탐험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탐험가는 석가모니이다. 그는 자아의 성찰, 깨달음의 획득 등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동국대학교 동굴탐험연구회는 국내 최초의 탐험단체로서 1970년에 이해풍 교수를 지도 교수로 김진동(미국거주), 윤희중,이주광, 신승훈, 장화자,임재호 등이 발족했다. 이후 약 600여 개의 국내외 동굴을 탐험 조사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다. 한국적 탐험이 없는 한국사회에 탐험정신을 불어넣고, 동기를 유발시켰으며, 기술적 지도도 많이 했다. 또한 600여 개의 동굴을 정확하게 측량해서 지도를 만들었고, 동굴생물들을 채집했으며, 새로운 종도 발견했다. 필자는 동국대 동굴탐험연구회의 7기 회원이었으며, 지도교수 역할도 했다. 그동안 여러 선후배들이 명을 달리했다. 특히 1975년에 1년 후배인 이진황이 눈앞에서 100m 넘는 수직굴 속으로 떨어져 희생당했다. 명복을 빈다.

필자는 1974년부터 뗏목탐험을 시작한 후에 1976년부터 5대강 뗏목탐험을 했고, 1983년 대한 해협뗏목 탐험(거제도-대마도-큐슈의 오도열도)을 시작으로 1996년(16일 동안 중국 절강성에서 산동성), 1997년(24일 동안, 중국 절강성에서 흑산도 경유 인천), 2003년(43일 동안, 중국 절강성-인천-제주도-일본)뗏목탐험을 했다. 또한 북만주에서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까지 말타고 답사했다. 그 밖에 배로 북해까지 90일, 자종차로 60일 동안 터키까지, 기차로 24일 동안 베를린까지 횡단했다. 그 밖에 현재까지 유라시아 세계의 오지를 탐사 중이다. 아쉽게도 1986년에 ‘한국탐헙협회’를 창립했었으나 학자라는 한계로 인하여 결국은 해체했다.
한국 사회 전반에 올바른 탐험행위들이 정착되기를 간곡하게 기원한다.

[해설 관련 서적]

(참고저서) 윤명철 지음, 역사는 진보하는가 해모수-(1983년, 대한해협 –일본 오도열도), 뗏목 탐험 3000리(1996년, 중국절강성-산동성), 윤박사의 뗏목 탐험(1997년, 중국 절강성 –흑산도-인천), 장보고의 나라(2003년. 중국 절강성--인천--완도-제주도-일본 오도열도)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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