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 1편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장수태왕의 평양 천도 1편

  • 기자명 이정우
  • 입력 2021.1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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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퍼블릭 = 이정우 기자] 황해진출로 외교 군사 강국을 추구한 정책이었다. 장수태왕이 즉위했던 당시 동아시아 세계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중국은 5호 16국 시대가 끝나고, 중국은 남북조라는 분단시대로 정리되고, 북방 초원에서는 유연이 통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구려에게 대패한 백제는 왜세력과 동맹을 도모하면서 재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수왕의 이상과 목표는 고구려를 강대국으로 만들고, 물자가 풍부하여 백성의 삶이 편안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이상사회였다.

장수태왕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국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를 이룩했다. 그는 78년 동안 정복활동을 벌이면서 영토를 확장했지만, 외교와 무역에 비중을 두었고, 이는 해양활동과 관련이 깊었다. 따라서 국가정책의 핵심은 해륙국가의 완성과 이를 위한 수도의 평양천도였다.

『삼국사기』 동천왕 21년조(247년)에 보면 “평양은 본래 仙人 王儉의 터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원(고)조선 계승성을 표방한 고구려에게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장소였다. 또한 양은 국제질서를 고려하면 분열된 중국의 남북조를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유리했고, 백제 신라 왜 등을 견제하는 다중방사상(多重放射狀) 외교에도 적합했다.

평양은 서해로 짧게 연결되는 항구도시였고,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항로를 개설할 수 있었다. 더구나 남진정책을 완성해서 통일의 위업을 실현시키려면 평양처럼 교두보이자 전진거점을 남쪽에 확보할 필요성이 컸다. 결국 장수태왕은 즉위 15년만인 427년에 수도를 압록강 중류의 항구도시인 국내성에서 평양지역으로 옮겼고,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더퍼블릭 / 이정우 기자 foxljw@korea.com 

더퍼블릭 / 이정우 foxlj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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