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무성’의 마지막 승부수…킹 아닌 킹메이커

김영일 기자 / 기사승인 : 2020-05-30 1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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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네 번째 킹메이커 도전기

▲ 미래통합당 김무성 전 의원 홈페이지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제20대 국회가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20일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141건의 안건을 처리한데 이어 29일 공식 회기가 종료된 것이다.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국회에서의 몸싸움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쟁점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밀어붙이려는 범여권과 이를 저지하려는 제1야당이 육탄전을 벌여 다시 동물국회란 오명을 얻었고, 법안처리율은 역대 최저인 37% 수준에 그쳤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20대 국회와 함께 의정활동에 쉼표 또는 마침표를 찍은 여야 중진 인사들도 적지 않다. 정치9단 박지원 전 의원, 집권여당 소속 원혜영 전 의원, 원조 소장파 정병국 전 의원 그리고 김무성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여의도에서 최소 20년 이상 의정활동을 한 베테랑 정치인들로, 이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김무성 전 의원의 경우 ‘킹메이커’를 자임하며 2년 뒤 대선에서의 정권 재탈환을 벼르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이에 <더퍼블릭>이 ‘무대(무성대장)’ 김무성 전 의원의 ‘킹메이커 역할론’에 대해 짚어봤다.

 

친박 좌장…2007년 경선 진두지휘

朴과 결별‥‘구원투수’로 나선 무대

20대 국회가 막을 내림과 함께 미래통합당 김무성 전 의원의 24년 의정활동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일찌감치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예정된 마침표였지만 24년간 몸담았던 여의도를 떠난다고 해서 정계 은퇴하는 것은 아니다.

김 전 의원은 총선 직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다음 행보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있는데, 2년 뒤에 치러지는 대선에서의 정권 재탈환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대선 무대에 본인이 직접 선수로 뛴다는 건 아니다. 대선 무대에 뛸 선수를 위한 정책·비전 제시 등의 무기를 준비하고, 어떻게 싸울지 전략을 짜는 ‘킹메이커’로서 활동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여의도 인근 마포에 사무실을 얻었고, 여기에 계파를 초월한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 개국공신으로 지목되는 ‘광흥창팀’도 마포에 있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광흥창팀의 양대 축이었다.

2년 뒤 정권 재탈환을 위해 킹메이커로 나서기로 한 김 전 의원은 과거 3번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바 있는데, 2번의 실패와 1번의 성공이었다.

친박의 좌장 “각하 수하가 배신자 소리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첫 번째 킹메이커 역할은 지난 2008년 17대 대선에서다.

당시 대선은 여야 간 대결보다는 과연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누가 나설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과 환승 요금체계 및 교통카드 지불 시스템을 개발한 이명박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시킨 후폭풍으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란 심폐소생술로 살려낸 박근혜 후보 간 경선이 뜨거웠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친박의 좌장(박근혜 캠프 선거대책총괄본부장)으로 경선을 진두지휘했다.

이와 관련된 한 일화를 소개하자면,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승리를 예상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김무성 의원을 불러 “박근혜는 안 된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이 된다”고 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각하, 제가 친박에서 넘버원입니다. 제가 나가면 배신자가 됩니다. 각하 수하가 어디 가서 배신자 소리나 들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치적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을 알면서도 박 후보와의 의리를 지켜나갔다.

다만, 대선 후보와 좌장 간 이견대립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2007년 경선 당시 경남지역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 초청 저녁모임. 이날 박 후보는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었다고 한다.

이미 술이 오른 김 의원은 박 후보에게 선거 자금이 다 떨어졌다며, 시세 20억원에 달하는 박 후보의 삼성동 집을 매각하고 예전에 살던 신당동 집으로 이사할 것을 권유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당선되면 (집 문제는)어떻게든 풀릴 겁니다. 떨어지면 내가 전셋돈 마련해주겠습니다”라며 삼성동 집을 팔아 선거자금을 쓰자고 했다.

이에 박 후보는 정색하면서 “제가 언제 돈을 쓰라고 했어요? 돈 쓰지 마세요”라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결국 삼성동 집 매각은 없었던 일이 됐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김무성 의원의 첫 번째 대권옹립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 2007년 8월 12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김무성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이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경선 1주일 앞둔 판세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친박에 좌장은 없다’ 결별 그리고 재회

지난 2009~2010년에는 세종시 수정안 파동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된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법안 원안을 강조했고, 김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했다. 김 의원이 세종시 절충안까지 제안하며 타협을 시도했지만 박 전 대표는 끝내 ‘친박에 좌장은 없다’라는 말로 김 의원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에 대한 후폭풍으로 김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공천탈락이 기정사실화 됐다. 공천탈락이 예상되자 김 의원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결국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공천탈락자들의 연쇄탈당을 막았다.

그렇게 여의도를 떠나 한동안 야인으로 지낸 김 전 의원은 18대 대선 정국에서 박근혜 캠프 구원투수로 복귀하게 된다.

당시 ‘안철수’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대선판이 요동을 쳤는데, 대선 후반으로 갈수록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

반면, 박근혜 캠프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으로 적잖이 시끄러웠고, 캠프가 철저하게 박 후보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박 후보 주위에만 사람이 몰리고, 박 후보의 승낙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일도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면서 정권재창출 실패라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당연히 캠프 분위기는 축 처져있었다.

이 타이밍에 박근혜 후보는 야인이었던 김 전 의원에게 도움을 청한다. 캠프에서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박 전 대표는 한 번 떠난 사람은 재기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친박에 좌장은 없다’며 결별을 선언한 김 전 의원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다는 건 절박함과 함께 일정부분 김 전 의원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 2012년 10월 11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워크샵에 참석,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킹메이킹 성공…정권재창출 일등공신

대선포기…허무하게 끝나버린 반기문

‘야전사령관’으로 복귀한 무대…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 옹립

구원투수로 나선 김무성 총괄선대위본부장은 선거 실무를 총괄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당사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캠프를 24시간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는 캠프 관계자들에게 “단합대회도 하면서 호방하게 외치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여러분과 같이 식사하면서 폭탄주 한잔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하고, 여러분 통장에 10만원씩 내 돈을 넣어주겠다. 삼삼오오 모여서 드시라”, “여성들은 일찍 들여보내되 남자들은 나랑 찜질방에서 자자”는 등 축 처졌던 캠프 분위기를 이른바 ‘무대 스타일’로 끌어올렸다.

또 “박 후보의 보좌진을 통하지 않고는 일이 진행되지 않던 방식을 전부 바꾸자”고도 했다.

여기서 보좌진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박근혜 정권 청와대에서 위세를 떨쳤던 문고리 3인방을 지칭하는데, 당시에도 이 문고리 3인방을 통하지 않고는 일이 진행이 안 돼 불통 논란이 일었다.

이에 김 선대본부장은 “박근혜 후보의 명령을 기다리지 마라. 우리가 결정해 선(先) 집행하고 후보에게는 후(後) 보고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지시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의 이 같은 주도로 캠프 분위기는 수동적에서 능동적, 불안정에서 안정적으로 바뀌었고, 이는 박근혜 후보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이렇게 김 전 의원의 두 번째 킹메이킹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킹메이킹에 성공한 김무성 선대본부장은 대선 이틀 뒤 자신의 사무실 문 앞에 붙여놓은 A4용지에 “이제 제 역할이 끝났으므로 당분간 연락을 끊고 서울을 떠나 좀 쉬어야겠습니다. 도와주신 여러분께 저의 마음속의 큰절을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함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 2012년 12월 21일 새누리당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여의도 당사 자신의 사무실 문 앞에 손편지를 남겨놓고 떠났다. 김 본부장은 편지에 그동안 함께 고생한 당 식구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대선 불출마…‘반기문 담을 그릇’

김무성 전 의원이 킹메이커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최종 꿈은 대통령’이라는 여의도 격언처럼 김 전 의원도 한 때 청와대 입성을 꿈꿨고, 새누리당 당 대표 시절엔 24주 연속으로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다만,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친박들이 ‘김무성표 국민공천제’를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노출된 ‘공천파동’으로 김무성 의원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고, 대권주자 반열에서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러던 중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한민국은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고, 김 의원은 국가 대혼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에 앞장서겠다고 천명함과 동시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2016년 12월 9일,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의 불참으로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99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어 헌법재판소로 전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김무성 의원은 동료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 시점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대권주자 지지율 1~2위를 앞 다투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국내로 복귀해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훗날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바른정당은 반기문 전 총장을 담기 위한 그릇이었다. 다시 말해 김무성 의원은 반 전 총장을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영입하려 했던 것이다.

김 의원과 반 전 총장 사이에 상당히 깊은 이야기가 오갔고, 유승민 의원의 페이스메이커 역할론도 거론됐다고 한다.


▲ 2017년 1월 18일 김무성 의원이 경남 진주시 MBC컨벤션진주에서 열린 바른정당 경남도당 창당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반기문 전 총장이 곧 우리당에 올 것이다고 말했다.


“가장 진정성 있게 얘기해주고 도와주려했던 김무성에 미안”

그러나 여기서 김무성 의원이 세 번째 킹메이킹은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국내로 복귀하자마자 반 전 총장을 겨냥한 언론의 혹독한 검증이 시작됐고, 반 전 총장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들은 하루에도 수십차례 쏟아졌다.

김 의원 입장에선 반 전 총장이 더 상처를 입기 전에 바른정당에 입당을 해야 방어도 하고 대응도 하고 할 텐데, 계속 시간만 끌다보니 속이 타들어 갔다.

결국 반 전 총장은 언론의 혹독한 검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낙마하고 만다.

반 전 총장은 2017년 2월 1일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귀국해서 20일 동안 많은 정치인과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장 진정성 있게 얘기해주고 도와주려고 애썼던 사람이 김무성 의원이다. 참 미안하게 됐다. 진심으로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날 김무성 의원은 술을 엄청 마셨다는 후문이다.

 

▲ 2017년 2월 1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왕을 만드는 사람’

킹메이커(Kingmaker).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권좌에 올리려면 그만큼의 경험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YS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고, YS정권에서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6선 국회의원으로 수많은 선거를 치러봄은 물론 집권당 대표를 비롯해 국회 요직을 두루 경험한 김무성 전 의원.

지난 29일 막을 내린 20대 국회와 함께 24년간의 여의도 생활을 마감한 김 전 의원은 2년 뒤 치러질 대선에서의 정권 재탈환을 위해 네 번째 킹메이커 도전에 나서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정치인 김무성’의 마지막 승부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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