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옛날 우리민족은 용감무쌍, 자유와 상생, 열정과 너그러움을 가졌다 - 3부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기사승인 : 2022-05-11 12: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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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우리민족의 조상들이 탐험정신, 목적지향성, 다양성, 통일지향성과 조화을 통해 우리 민족성은 생활을 지향하고, 적극적이고 왕성한 탐험정신을 가졌고, 개방적이어서 문화가 다양했다 또한 조화를 지향하면서 공동체적 질서에 충실하며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이상을 추구해온 집단”이라고 강조 했다.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옛날 우리민족은 용감무쌍, 자유와 상생, 열정과 너그러움을 가졌다 - 3부

(22년 5월 10일자)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에서 우리나라의 ‘이어 평화유지·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2부에 이어, ’옛날 우리민족은 용감무쌍, 자유와 상생, 열정과 너그러움을 가졌다‘-3부(22년 5월 10일자)를 업데이트 하였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5월 10자 주요 내용]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 대해서는 많은 정의와 개념들이 있었다. 우리가 수긍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또 자신에 대한 주변의평가를 비판없이 받아들인 면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는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을 통해 우리 민족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특히 부여 사람들은 횐빛을 숭상한다고 했다. 그런데 고구려를 가리켜서는 포악하고 성급하며 노략질을 좋아 한다고 했다.

이는 고구려를 향한 적개심이 강했기 때문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고구려인들은 물론 싸움을 잘했으나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남달리 자유의지가 강한 탓이었다. 일본은 침략의 의도를 갖고 이론화시키고, 조직적으로 전파하기까지 하였다. 이른바 식민사관이 그것이다.

조선인들은 게으르고 사대적이며 의타성이 강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파성이 강하여 늘 분열되었으며 싸움질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예를 그럴듯하게 제시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타율적이고 사대적이며, 모방을 잘하고, 변화와 운동을 싫어하는 정체성이 강한 민족이라고 평가해왔다. 쉽게 지배할 수 있고, 지배에 적합한 인간형을 만들기 위해 민족성을 부정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의 평가는 어떠한가?

'恨의 문화'라 하고, 한을 가진 민족이며, ‘정情의 문화’, 정靜적인 문화라고도 한다. 또 '은근과 끈기'가 있는 민족이라고 규정해왔다. 또 '평화를 사랑한 민족'이며 역사 이래 900여 회에 달하는 침략을 당해왔으나, 한 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민족성이나 집단문화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으로 파악해서는 정확하지 못하다. 객관적인 분석이나 검증없이 어떠한 문화현상이나 지리적 요인을 특별히 강조해서 평가하면 안된다. 또 하나, 민족성은 일정 시대, 일정 공간에서 일어난 상황을 확대해석해서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안된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로 민족의 형성과정과 역사를 진지하게 살펴보며 세계의 다른 문화를 관찰하고 경험한 결과와 비교하면서 우리의 민족성을 이해해야 한다.

1) 탐험정신

우리 민족성의 가장 큰 특성으로 탐험정신을 꼽을 수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북방의 초원문화와 대륙문화, 해양문화가 만나는 동아시아지역은 초창기부터 문화의 역동성이 넘실대는 곳이었다. 그 바로 한가운데에 우리 민족이 있었다. 지구상의 다른 지역에서 출발하여 8갈래 이상의 길을 통해서 초원과 대산맥,강, 그리고 사막과 대평원을 통과하여 이 땅에 닿았다. 중국의 화북지방과 동남아시아, 일본열도에서도 바닷길을 헤치며 조금씩 흘러들어 왔다. 대장정을 시작한 그들은 도중에 질병과 고통, 전쟁과 학살, 좌절감으로 도중에 포기도 했을 것이며 내부의 갈등 또한 심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온 사람들은 용감하고 탐험정신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살아갔다. 부여와 고구려인들처럼 기마민족의 피와 문화가 섞인 탐험가의 후손들은 만주일대를 개척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백제는 해양문화가 발달해 황해와 남해에서 활동했고, 가야는 일찍부터 일본열도로 진출했다. 신라는 뒤늦게 출발했지만 역동성과 패기로 삼국을 통일하였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북으로 연해주까지 영토를 넓혔으며, 험난한 겨울의 동해바다를 건너 일본열도와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뿐만 아니라 북해도는 물론 사할린까지 진출했으며 이렇게 그 시대의 사람들은 곳곳에서 문화를 꽃피우며 나라를 만들어 발전시켰다. 단군신화의 환웅, 북부여의 해모수, 주몽은 개척자 집단의 리더였다. 고구려는 탄생부터 성장까지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던 탐험정신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구현한 나라이다.

2) 목적지향성


우리 문화에는 목적을 지향하는 순수한 성격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이상향을 찾아 이 땅에 온 것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왜 동쪽 끝으로 왔고, 이 곳에서 멈추었을가? 해가 떠오르고 문화의 씨앗이 움터 오르는 터였기 때문이다. 해는 인간의 생명과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밝음과 진리와 지혜를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대부분 하늘을 숭상하고 해를 숭배했다.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인들은 하늘을 신성시하고 스스로 하늘의 자식이라고 했다 흉노인들은 왕을 ‘텡리고도’라고 했는데 이는 천자란 뜻이다.

텡리란 텡그리계의 언어로서 우리말 단군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우리처럼 집요하게 해를 추구하고 하늘을 숭모해온 민족은 매우 드물다. 한국이란 명칭도 해와 관련이 있다. 조선, 부여, 신라 등의 나라이름이 모두 해와 밝음을 의미한다. 왕의 이름들도 역시 해와 관련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는 하늘과 해를 숭배했던 것이다. 우리는 목적의식을 가진 탐험가들의 후손이며 자의식이 강한 역사를 가졌다.

3) 다양성

우리 문화의 중요한 특성은 다양성이 있고, 성격이 개방적이다. 적어도 외국문화와 권력에 오염되기 전에는 문화의 폭이 넓고 깊었던 것이다. 다양한 자연환경 속에서 비옥한 농토를 얻어 생활했으며, 그에 따라 식생대 역시 다양했다. 경제형태나 교역방식이 다양했고, 종족들 간의 언어 관습도 달랐다. 이렇게 민족은 동만주와 연해주 일본의 수렵삼림문화, 동몽골과 북방방면의 유목문화, 화북에서 올라오는 중국의 한족문화, 해양을 통해서 들어오는 해양남방문화, 한반도 남부의 문화 등이 하나로 모인 집결지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와 생활경험으로 인하여 개방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교, 선교, 불교, 유교, 기독교, 서구 사상 등 많은 종교와 사상이 들어왔고, 또 차별과 충돌 없이 뿌리를 내린 것도 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는 다양한 문화는 물론 문화의 전형적 특성인 국제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다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영토는 줄어들어 반도로 고착되고, 농경문화에만 집착하다보니 역동성이나 개방성도 잃어버리고 급기야 우리문화는 폐쇄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탄력성을 잃어버리고 시대변화와 국제환경에 필요한 대응력을 상실하여 결국은 식민지가 된 것이다.

4) 통일지향성과 조화

우리 민족성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화를 지향하고 모든 것을 통일시키려는 성격이다. 우리 민족성을 논할 때 당파성이 강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궤변이다. 본래는 통일지향적이었고, 모든 일을 조화와 협력의 관점에서 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개방적인 태도는 때로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 다양성이란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혼란을 야기시킨다. 문화의 혼란이란 곧 정치의 혼란 사회의 혼란으로 비화된다. 때문에 다양성이 혼란 상태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화와 통일성으로 전환시켜야만 했다. 이러한 민족 내부의 당위와 필요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평화를 위해서도 우리 문화는 조화와 통일을 지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땅은 지리문화적으로 동아시아의 각각 다른 문화가 모여드는 집결지이므로 그 문화들을 종합하고, 조화시킴으로써 지역간 의 문화갈등과 격차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군신화가 주장하고 있는 '3의 논리', '홍익인간이념'이란 바로 조화의 논리이며 공동체 질서이다 특히 조선을 계승한 고구려인들은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 주변의 여러 종족을 포용하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세계국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유독 김치나 곰탕, 비빔밥 등을 좋아하는 이유를 그것이 가진 조화와 통일지향성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성은 '은근과 끈기', '한의 정서', 평화를 사랑한 것도 아니요, 더더욱 당파성이 강하고 사대적이며 식민지 근성에 젖어 있는 것도 아니다. 민족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의미있는 생활을 지향하고, 적극적이고 왕성한 탐험정신을 가졌고, 개방적이어서 문화가 다양했다 또한 조화를 지향하면서 공동체적 질서에 충실하며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이상을 추구해온 집단이었다.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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