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평화유지·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 - 2부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기사승인 : 2022-05-08 12: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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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평화유지·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에 원조선과 고구려 시대 당시, “중국과 유목종족이 약탈전쟁을 일으킬 식량자원, 인적자원들이 부족한 공간”을 분석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평화유지·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 - 2

(2257일자)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에서 우리나라의 ‘적대국의 침공을 막는 산, 강, 해양의 지정학적 혜택-1부’에 이어 '평화유지·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 - 2부' 업데이트 하며, 원조선과 고구려 시대 당시에 상황을 분석했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5월 7자 주요 내용]


평화유지와 자체경제에 유리한 생태환경과 지경학적 혜택

많은 한국인들은 자기역사를 오해하고, 스스로 왜곡시키는 경향까지 있다. 사대주의의 유습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젖은 탓이다. 역사의 전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하면 대규모의 침략을 받은 적이 아주 적었다. 집단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교체된 일이 없었고, 나라가 멸망한 적은 2번 밖에 안된다.

우리는 왜 어떻게 해서 정치대국, 군사강국의 전면공격을 받은 경험이 적고, 다른 민족들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역사를 유지할수 있었을까?

자원전쟁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가 갈등을 벌이고 충돌할 때 중요한 배경과 촉발의 동기는 자원, 무역망 등 경제적인 측면에 있다. 특히 자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곡물 등의 식량자원, 동· 철· 금 등의 지하자원, 말과 무기 등의 군사자원, 노동력인 인적자원(포로들) 등이 있다. 그 밖에 비단·면·보석·모피· 약품 등의 사치품들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벌이는 전쟁의 요인은 될 수 없었다.(윤명철,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제 2장)

동아시아는 지리, 지형, ‘힘(power)’을 고려하면 중국 공간, 북방초원 공간, 동방 공간의 3형태로 유형화시킬 수 있다. 3 공간 또는 3 세력들은 지정학적, 지문화적, 지경학적으로도 고유한 특성과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특히 생태환경이 달랐으므로 자원의 종류와 양, 생산방식, 생활양식, 심지어는 국가관리방식이나 전쟁방식 등이 달랐다. 동방문명권의 핵심인 우리 국가들은 다음 몇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정치강국, 군사강국인 중국과 유목민족들이 벌이는 약탈전쟁의 본격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첫째, 생활 및 국가재정과 직결된 쌀· 조· 콩· 수 등 식량자원 문제이다. 중국은 황하 유역의 밭농사와 양자강 이남의 벼농사를 근간 산업으로 한 농업경제였다. 반면에 북방은 초원의 목축과 약탈을 유목 경제로서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그런데 동방은 농업, 임업(동만주, 북만주), 목축(요서 및 중만주)의 혼합경제 지역이었다. 고구려도 남만주 일대와 대동강 유역에서 농경을 했으나 식량이 부족해서 중국 사료(삼국지)에 기록될 정도였다. 따라서 식량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방어측인 중국과 약탈 측인 북방지역 사이였다.

둘째, 철 등을 비롯한 부여의 옥, 여러 지역의 금· 은 등 '지하자원' 문제이다. 3힘이 교차하고 조우하는 요동 지역은 양질의 지하자원이 매장된 자원지구였다. 특히 요동성, 안시성 지역은 최고의 철생산지로서 오늘날 중동의 대유전 지대와 유사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농업과 군수산업에 재료를 제공하는 제철 산업은 채굴작업인 광업과 제련업이 동시에 발달해야만 했다. 즉 숙련된 기술자들과 안정된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일시적인 점령이 아닌 실질적인 '영토(territory)화‘ 작업이 완결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동성(mobility) 문화인 유목집단들이 약탈 지역으로 선택하기에는 효율성이 적었고, 그래서 양 세력은 철을 수출하고, 말 등을 수입하는 상호무역을 하는 공존상황이 많았다. 그러므로 철 자원 등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생산자인 동방 세력과 약탈자인 중국 세력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입장에서는 국가전력을 투입해서 요동과 두만강 하구 등의 철자원을 확보할 필요성은 적었으므로 대전쟁은 아주 적었다. 위서에는 장수왕 때에 북위에 매해 황금 200근 백은 400근을 보냈고, 후에는 더 많아졌다는 기록이 있다(윤명철,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셋째, 포로 및 강제이주 등으로 나타나는 '인적자원' 문제이다. 동방지역은 인구 자체가 적었고, 거주지역이 넓은 데다가 산과 숲, 강(만주의 강) 등의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인구가 분산되었으며, 도시들이 적었다. 따라서 노동력을 수급받거나 포로약탈을 위한 전쟁 대상으로서는 자격이 부족했다. 물론 고구려 때의 일부 사실들, 645년에 벌어진 고구려와 당나라 간의 요동성 전투, 고구려 멸망 후와 백제 멸망 후에 발생한 대규모 포로들 압송 등 몇 몇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계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역사의 일반적인 기준을 보면 상대적으로 미약한 규모와 횟수이다. 따라서 인적 자원을 둘러싼 전쟁은 주로 중국과 북방 세력 사이에서 발생했다.

넷째, 국가전략 자원이 아닌 '일반자원' 문제이다. 고대에 동방공간에서 생산되는 말(부여 및 발해 솔빈부), 활(고구려 각궁), 쇠뇌(고구려, 신라 등) 등의 군수물자, 각종 모피(원조선, 고구려,발해), 인삼(원조선, 고구려, 발해, 신라 등) 등의 약재, 비단(고구려<길림지역>, 신라)과 면 등의 의류, 목재와 흑요석(백두산 지역) 등은 일반 물자들에 속한다. 때문에 군마용말 등의 일부 사례를 빼놓고는, 대부분 다양한 형식의 무역으로 교환됐으므로 전쟁의 요인이 되지는 않았다.

다섯째, 동아지중해라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무역활동' 문제이다. 동방문명권은 지경학적으로 우수한 생태환경을 갖추었으므로 다양한 종류의 생산물이 있었다. 일반자원들과 일부 전략물자들은 무역활동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동아지중해의 한가운데인 해륙 물류망의 허브(hub)에 있었으므로 군사적인 상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여러지역으로 항해할 수 있었다. 원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 가야· 발해, 심지어는 고려도 각각 자기 해역에서 일본열도의 여러 해역, 황해(서해)의 발해 해역, 산동 해역, 양자강 하구 해역 등에 있는 중국계 나라들을 상대로 무역을 했다(윤명철, 한국해양사).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 및 유목세력들이 국가와 문명의 운명을 놓고 우리 ‘터(field and multicore)’를 상대로 대규모의 약탈전쟁을 일으킨 사례는 거의 없었다. 우리 터는 생태환경의 덕분에 생활과 관련된 일반자원은 풍부하지만, 전략자원들은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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