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폭력 피해자 “朴 업적에 박수치는 사람들에 무력감 느껴”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 “朴 업적에 박수치는 사람들에 무력감 느껴”

  • 기자명 김영일
  • 입력 2021.03.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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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박원순 전 시장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며 2차 피해를 호소했다.

피해자는 이날 오전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피해자 입장문은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대독했다.

피해자는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다. 그분(박 전 시장)의 위력은 그의 잘못에 대해, 그 사람을 향해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며 “그분의 위력은 그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 내용을 다듬고 다듬으며 수백 번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는 이어 “그분의 위력은 그의 잘못이 점점 심각한 수준이 되더라도 제가 온전히 감내하게 만들었다”면서 “그분의 위력은 그의 잘못으로 인해 제가 겪는 피해보다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잃었을 때 제가 직면하게 될 상황을 두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피해자는 “그분의 위력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저를 지속적으로 괴롭게 하고 있다”며 “그분의 위력은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저를 괴롭힐 때 그들의 이념 보호수단으로 활용됐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분의 위력은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간 편지 대독과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밝혀왔던 피해자는 이날 처음으로 직접 기자회견에 나섰다.

‘저는 박원순 전 시장의 위력 성폭력 피해자’라고 소개한 피해자는 “그동안 지원단체와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발표해 온 제가 제 안에 참아왔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저와 가족들, 지원단체와 변호인단은 수없이 고민했고, 그 시간들이 겹겹이 모여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의)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소에서 우리 사회에 저라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졌다”며 “그 속에서 제 피해 사실을 왜곡해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전 시장을 옹호하는 지지층을 향해 “아직까지 피해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이라며 “고인이 살아서 사법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됐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피해사실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이 상황을 악용해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 상실과 고통에 공감하지만 그 화살을 저에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저는 북부지검의 수사결과와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통해 제 피해의 실체를 인정받았고, 지난주 비로소 60쪽에 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아봤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했고, 일부 참고인들의 진술 등 신빙성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저는 그동안 제가 고소하기로 한 결정이 너무도 끔찍한 오늘을 만든 건 아닌가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렸으나, 이 고통의 시작도 제가 아닌 ‘누군가의 짧은 생각’ 때문이었음이 드러났다”며 “이 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함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의 인정 절차를 잃었다”고 했다.

이어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었고, 모든 일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다”며, 우회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했다.

피해자는 “저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식과 멀어지는 일들로 인해 너무도 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싶다. 잘못한 일들에 대해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면 용서하고 싶다”며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구분과 남은 사람들의 위력 때문에 겁이 나서 하는 용서가 아니다. 저의 회복을 위해 용서하고 싶다. 그분의 잘못 뿐만이 아니다. 제게 행해지던, 지금까지 행해졌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과하라”며, 사과를 전제로 용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나아가 “저는 이번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잊혀져가는 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저라는 존재와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전임 시장의 업적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낀다”며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시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는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조심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좋게 에둘러서 불편함을 호소해야 바뀌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더퍼블릭 / 김영일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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