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들어갈 수 없는 임진강 가 고구려의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을 찾아간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들어갈 수 없는 임진강 가 고구려의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을 찾아간다!

  • 기자명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입력 2022.02.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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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은 가장 대표적인 성으로서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가 길다란 삼각뿔의 현무암 단애 위에 쌓은 강변방어체제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은 미군의 작전구역 안에 있으므로 현재까지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유물이 출토 되기도...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들어갈 수 없는 임진강 가 고구려의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을 찾아간다! 

(22년 2월 13일자)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을 통해, 들어갈 수 없는 “임진강 가 고구려의 이잔미성(남호로고루성)을 찾아간다”를 업데이트 했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2월 13일자 주요 내용]

남호로고루성(이잔미성)

삼국시대에 임진강은 백제와 고구려,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역할을 하였다. 호로고루성, 은대리성, 당포성, 칠중성, 아미성, 수철성 등 십 여 개의 삼국시대 성곽이 있다. 호로고루성은 가장 대표적인 성으로서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가 길다란 삼각뿔의 현무암 단애 위에 쌓은 강변방어체제이다. 동네 사람들은 이 성을 ‘성’을 뜻하는 재미산 또는 재미성(財尾城) 자미성. 미성 등으로 불러왔다. 이 부분은 삼국사기에 호로하(瓠瀘河), 표하(瓢河) 등으로 기록됐다. 조선시대에는 호로탄(瓠蘆灘)이라고 불렀다.

이 곳은 하류에서는 배를 타지 않고 강을 도하할 수 있는 얕은 여울목이다. 바로 옆에 조선시대 가장 중요한 포구였던 고랑포구가 있고, 경순왕릉이 있다. 장단을 거쳐 개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므므로 6,25 때도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직진했고, 근처인 칠중성은 삼국시대 뿐 만 아니라 영국군과 중공군과의 접전이 벌어졌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로고루는고구려가 임진강의 본류와 북쪽의 지류가 만나는 합수점의 위쪽 삼각뿔 모양의 땅을 활용해 개활지인 동벽에 높이 이상의 토석혼축성을 쌓고, 북벽의 일부에는 석벽으로 보축하고, 본류쪽은 남쪽은 단애 윗부분에 석축으로 보완했고, 표면에는 목축을 설치했다. 그리고 동벽의 양쪽에는 견고한 구조로 치를 쌓았다. 이 성은 후에 신라가 보축해 사용했고, 고려시대에도 사용됐다. 성의 둘레는 남벽 161.9m, 북벽 146m, 높게 쌓은 동벽 93m(남은 부분 89.3m)로 총 401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2000평 정도인데, 온돌이 설치된 건물터, 우물들이 발굴됐다. 글자가 새겨진 붉은색 격자문기와 등 고구려 토기들이 많이 출토됐으며, 신라와 고려의 토기도 발견됐다. 또한 금동불상 한 점을 비롯해서 쌀 등의 탄화된 군량미들, 고구려군이 사용했던 북의 부분, 화살촉 등의 무기류 등이 출토됐다.

고구려 강변방어체제들은 대부분 강의 양쪽 언덕에 성을 설치하는 특성이 있다. 호로고루성도 강 건너 남쪽에 또 하나의 성이 있는데, ‘남호로고루’라고 부른다. 때문에 2성을 합해서 ‘이잔미성’이라고 부르고, 남호로고루성만을 ‘이잔미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국여지지의 장단도호부 조에는 “호로고루는 장단부의 동쪽 32리에 있는데 호로탄 위에 적성과의 경계에 있으며 두 개의 루(보루)는 전해오기를 삼국시대의 군사주둔지(屯戌處)이다.”라고 기록됐다. 또 대동지지는 “호로고루는 현의 동쪽 32리에 있고, 호로탄 위의 적성과의 경계에 2개의 루가 서로 각을 두고 마주 대하고 있는데 석벽은 삼국시대에 호로하 변에 쌓았다.” 경기읍지 장단현, 고적조에는 “당나라의 유인궤가 호로하를 끊고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루이다”라고 기록했다. 조선보물유적조사자료 경기도, 장단군조에는 “장단면 장남면 원당리 에 있고 석축 300간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

이잔미성은 미군의 작전구역 안에 있으므로 현재까지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됐다. 북호로고루성도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었고, 1991년도에 육사박물관이 임진강 유역을 조사할 때 개략적으로 알았을 뿐이었다. 1995년도에 처음 갔을 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무렵 군의 호위를 받아 ‘이잔미성’을 답사했었는데, 지금처럼 성의 형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성의 둘레는 약 300m 정도인데, 내부에서 백제와 신라의 토기편들이 나왔다고 한다(육군박물관). 아직도 미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지만, 이제 곧 철수하면 조사가 시작되고, 단계적으로 발굴될 것이다. 바로 남쪽의 덕진산성, 근처 칠중성 등을 발굴하면 고구려 방어체제의 구체적인 특성들과 이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역사의 실상 등을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해설 관련 서적]
(참고저서) 윤명철 지음, 고구려 해양방어성(해성)연구, 해양방어체제와 강변방어체제, 장보고 시대의 포구조사(경기도편)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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