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치는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문화예술계, 공식 사과 및 국가책임 이행 촉구

메아리치는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문화예술계, 공식 사과 및 국가책임 이행 촉구

  • 기자명 김영일
  • 입력 2021.0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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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페이스북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헌법재판소가 최근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문화예술인이나 단체를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가운데, 문화예술계에서는 대통령과 국회의 공식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앞서 헌재는 지난달 23일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국가가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사실 ▶이같이 법적 근거 없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인을 사업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는 사실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었다는 사실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는 사실 ▶자의적인 차별행위로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사실 등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박근혜 청와대는 지난 2013년 9월경부터 2014년 5월경까지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좌편향 인사 및 단체’에 대한 블랙리스트와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의 축소·배제 관련 내용이 담긴 방안을 만들었고, 이를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 하달했다.

문체부는 청와대로부터 하달된 지시에 따라 각종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이들의 지원을 차단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 청와대의 행태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7년 4월 헌법소원을 냈다.

실천연대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예술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예술가들”

헌재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한데 대해, 문화예술계에선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대통령과 국회의 공식 사과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블랙리스트 사건 위헌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문재인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및 사회적 기억, 피해자 회복에 대한 명확한 약속 이행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대통령과 국회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청와대‧국가정보원‧문화체육관광부‧공공기관 등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였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과 국회는 공무원 조직 전체가 블랙리스트 사건을 잊지 않고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약속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적극적으로 재발방지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지원기관과 예술현장의 파괴된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존재하는데, 직장을 잃은 공공기관 직원이 있으며,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로 아직 예술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사실을 기억하고 책임의식을 느낀다고 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해 9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가 피해자 500명(응답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3%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어 97.3%는 블랙리스트로 인한 명예회복과 피해 배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실천연대는 또 “대통령과 국회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수직적인 관료 조직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러한 행정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대통령과 국회에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공식 사과 및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지난달 8일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릴레인 1인 시위(주말 제외)를 진행하고 있다.

예술위, 블랙리스트 부역자?…“국가예술위원회 전환 및 자율운영협약 체결 방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내부에서도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예술위 ‘아르코 혁신TF’의 권고에 따라 설치된 현장소통소위원회(소통소위)는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청와대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공식 인정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고 있는데, 청와대의 침묵은 블랙리스트사건 해결에 대해 산하기관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를 겨냥해서는 “국회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쟁의 대상으로 인식해 블랙리스트 사건 재발방지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예술인권리보장법안’을 방기함으로써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예술인들의 지위와 창작 활동을 보장해 블랙리스트와 같은 사태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지난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21대 국회 들어 다시 법안이 발의됐지만 예술인 범위가 축소되고, 예술인 활동을 방해한 공공기관·종사자 처벌조항이 삭제되는 등 후퇴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소통소위는 이어 문체부를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소통소위는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문체부도 블랙리스트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가 결핍돼 있는데,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사건을 언제든지 구조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는 산하 기관들과의 수직적 의사전달구조를 변경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예술위의 자율적인 운영을 위한 자율운영협약서 체결에 대한 논의가 표류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대표적인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소통소위는 특히 예술위의 개선을 강하게 요구했다.

소통소위는 “예술현장의 파트너를 자임하면서도 블랙리스트 실행 기관이라는 씻기 어려운 오명을 안고 있는 예술위는 반성과 실천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국가예술위원회 전환과 문체부와의 자율운영협약서 체결을 장기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예술위는 구조적인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초, 광역, 중앙을 가로지르는 예술현장과의 협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향성과 로드맵을 만들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예술위 전체의 차원이 아니라 관성에 따라 소위원회 운영의 틀에 가두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소통 소위는 “문체부는 산하 공공기관들과 지시가 아닌 협력이 바탕이 되는 의사결정구조를 마련하고 예술위와 정상화된 자율운영협약서를 조속히 체결하고, 예술위는 국가예술위원회 전환을 위한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자율성의 근간이 되는 기초-광역-중앙을 아우르는 거버넌스 로드맵을 마련한 후 그 성과를 예술현장에 공유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예술위는 블랙리스트에 부역했다는 사실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성찰하고 이를 예술위의 행정 전반에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예술위 위원회는 예술위와 관련된 현장 소통소위의 요구 사항들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이행 로드맵을 2021년 3월 이전에 공개하라”며 “이행 로드맵에 따라서 진척된 사안을 연말에 예술현장에 공유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고 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 소위원회 페이스북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더퍼블릭 / 김영일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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