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공동칼럼]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신중히 고려해야

[청년 공동칼럼]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신중히 고려해야

  • 기자명 심정우
  • 입력 2021.08.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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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손정민 씨가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이를 두고 한동안 온갖 의혹과 루머가 빗발쳤다. 그의 사망 전후 함께 있던 친구 A 씨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거짓 정보가 양산되었고, 언론은 메시지의 진위를 검증하지 않은 채 이를 퍼 나르기 바빴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A 씨와 경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을 향해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그래야만 혼란과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처럼. 지난 두 달은 이들이 한 데 모여 이룬 이 비현실적 풍경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현주소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간이었다.

이처럼 사회적 혼란이 불거지며, 그 원인으로 지목되던 가짜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힘을 얻게 됐다. 전부터 가짜뉴스 생산자나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부분 지지부진한 논의에서 그치기 일쑤였다. 그러다 지난 5월 말 더불어민주당이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를 출범하며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윤영찬, 정청래, 최강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세 법안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 모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민사상 가해자가 ‘악의적 목적으로’ 또는 ‘무분별하게’ 피해를 입힌 경우,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시 실제 손해의 최대 몇 배에 이르는 금액을 추가적으로 배상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즉, 민사상 손해배상에 형벌적 요소로서의 벌금을 더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세 명 모두 손해액의 최대 3배에 이르는 액수를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정 의원과 최 의원의 법안은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면, 윤 의원의 법안은 유튜버를 포함한 인터넷 이용자 모두를 포함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취지 자체는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가짜뉴스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고 피해자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처벌 강화라는 관점에서만 가짜뉴스를 규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문제가 있다. 해당 법안들이 무비판적으로 통과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 제도 도입의 실익보다 현저히 클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 훼손하고 위축 효과 불러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숙고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통틀어 표현의 자유라 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성립하게 하는 필수적 전제라는 점에서 중요한 권리다.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표현’이야말로 뜻과 개성을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서 이미 명예훼손죄가 규율되어 있음에도, 규제를 추가하는 것은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지닌 독특한 특성인 ‘위축 효과(chillingeffect)’에 기인한다. 위축 효과란, 표현의 제재에 불안을 느끼는 개인들이 스스로 입을 닫는 현상이다. 누군가 가짜를 유포했을 때 불이익을 받으면, 불이익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는 침묵의 일상화로 이어진다. 어떤 표현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짓 정보만 규제하고자 했던 시도는 모든 표현을 위축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윤영찬 의원안은 인터넷 이용자 전체를 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그 심각성이 크다.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벌금까지 부과…위헌의 소지 있어

이중 처벌의 가능성 역시 문제가 된다.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허위, 불법 보도일 때다. 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의 구성요건과 유사하다. 후자의 경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라는 요건을 두고 있어서,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허위, 불법 정보를 퍼뜨린다면 명예훼손죄 역시 적용이 가능하다. 즉, 가짜뉴스를 유포하면 명예훼손은 명예훼손대로 처벌받고 피해자의 손해 인정액 이상의 벌금을 내게 된다는 뜻이다.

규제 찬성론자들은 민사적 배상과 형사적 처벌을 구분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고, 이미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상법에 일부 도입되어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징벌적’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형벌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 사실상 처벌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는 헌법 제13조 1항의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크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또한 법질서를 중시하는 탓에 형법상 명예훼손죄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위헌 논란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나아가 제조물책임법이나 특허법 등 일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상법의 경우는, 공정한 상거래를 목적으로 하는데, 해당 법안은 그 중요도가 현저히 높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 정당한 비교라고 할 수도 없다.

정권 입김 따라 법 적용 달라질 수도…악용 우려 커

마지막으로, 해당 법안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최강욱 의원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함께, 현행 언론중재위원회를 ‘언론위원회’로 확대 설치할 것을 규정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언론위원회가 허위, 불법 보도의 악의성과 고의성을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태껏 거짓 정보로 인한 피해 여부는 민사나 형사 쟁송으로 사법부가 판단해 왔으나, 그 판단 주체를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보도의 악의성과 고의성이 자칫 ‘자의적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고, 명예훼손죄 여부를 검토하는 사법부 판단과 그 결과가 다를 경우 일관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법안의 구체적 내용은 이러한 우려가 단순 기우에 그치지 않는 것임을 보여준다.

최강욱 의원안은,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기구로 조직을 개편하고, 인권 및 언론 관련 활동 경력자를 포함한 총 120명으로 인원을 확대할 것을 규정한다. 이러한 방침은 언론중재위원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현행 ‘언론중재위원회’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정부의 행정 감사를 받지 않으며, 위원장도 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선출한다. 

반면, 최 의원 안의 ‘언론위원회’는 별도 운영 재원 규정을 삭제하고, 문체부 장관이 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게 하고 있어 그 구조가 정부 종속적이다. 게다가, 인권 및 감시활동 관련 종사자라는 새로운 범주를 추가해 특정한 정견을 가진 시민단체가 언론위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 두어 위험을 더한다. 이는 언론 또는 시민의 비판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판단 기관이 구조적으로 정권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정부 비판적 표현을 제재하는 데 해당 법안을 악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짜뉴스의 본질 이해하고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지금까지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시 우려되는 부작용을 살펴봤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과, 이중 처벌의 위헌성, 법안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가짜뉴스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는 ‘처벌’에 치우친 접근에서 벗어나 새롭게 문제를 바라보아야 함을 시사한다. 가짜뉴스 자체를 금지하고 규제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가짜뉴스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과정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회가 혼란하고 불안정해질 때마다 언제나 등장했던 것이 가짜뉴스였다. 문명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이다. 백영민(2019)의 연구는 가짜뉴스가 사회적 폐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포퓰리즘의 득세와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민족주의의 대두, 이어서 최근 일어난 코로나19 사태까지. 우리를 덮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이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초래하였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진짜 문제는 가짜뉴스 처벌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가짜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더욱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해결법에 천착하는 대신,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피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 사회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굿네이션스 자료제공>

기자 심정우

공동작성 김지영, 김형일, 이선미, 이소이, 정현우

더퍼블릭 / 심정우 goodnations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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