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신역사학 강좌, 역사와 종교 - 2부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신역사학 강좌, 역사와 종교 - 2부

  • 기자명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입력 2022.02.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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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종교 사이에는 ‘주체와 대상자’ 들의 성격 차이...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신역사학 강좌, 역사와 종교 - 2부 (22년 2월 20일자)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에서 역사와 종교,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른가? 라는 내용으로 신역사학 강좌 2부를 업데이트 하였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2월 20일자 주요 내용]
 

역사와 종교(신앙)의 만남과 이별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의 탄생과 삶, 사회적 존재로서 인류의 존속은 ‘역사’ 그 자체를 말한다. 한편 종교는 생명체가 공유한 ‘타자’에 대한 본능적인 대응을 너머 인간으로서 자의식을 시작한 직후부터 발명한 최고, 최상의 산물이다. 따라서 역사와 종교는 동전의 앞 뒷면, 옷의 속과 겉(덧)으로서 하나(1)이면서 둘(2)이고, 둘(2)이면서 하나(1)의 관계였다. 그래서 한 매듭을 이룬 두 가닥의 끈으로서 인간과 사회를 ‘엮는(lay)’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동일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역사와 종교는 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역사는 일체감의 확인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통시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영생’의 가능성도 예단할 수 있다. 물론 원근, 다층의 공간들도 일체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서 인간의 삶, 나아가 우주 내의 모든 것이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전해온 ‘만물일체’, ‘천지동근’,‘시유불성’,‘물아일체’ 등의 용어와 개념들에 접근 시킬 수 있다.

역사와 종교는 진리 사실 등의 인식, 깨달음의 ‘방법과 과정’에 차이가 있다.

종교는 믿음, 수행을 통해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사실과는 무관하고,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다. 때로는 절대존재(神, God)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부수성’ 등으로 인해 개체의 ‘자유의지(free will’)가 약화되거나 상실될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신적인 존재는 인간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비논리(Non logic)’ ‘초논리(Trans logic)’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

반면에 역사는 다른 점들이 있다. 역사의 정의를 또 하나 제기한다. “역사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존재’와 ‘인식’ 사이의 불일치를 일치로 전화시키고, 완성을 구현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역사에서 사실을 찾고 확인하려면 사료, 유물 등의 자료들을 상호교차하는 검증작업이 필수적이고, 더불어 직접체험, 간접체험 등의 시도 또한 필요하다.

역사와 종교 사이에는 ‘속도’라는 또 하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종교는 수행과 믿음을 통해서 어느 순간에 현실에서 질적으로 비약한다. 유물변증법에서 활용한 ‘양질전화’가 일어난 것인데,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지만,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다.
반면에 역사는 지식을 활용한 끝없는 교육을 통해서 인식을 확장하고, 깊게할 수 있다. 때로는 현장체험 또는 구체적인 ‘사고실험(though experiment)’을 통해서 더욱 근접할 수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처럼 천천히 단계적으로 확인하며 발을 디딜수 있다.

역사와 종교 사이에는 ‘주체와 대상자’ 들의 성격 차이가 있다.

종교에서 주체의 명분은 사람들이지만, 실질은 선지자·각자(깨달음을 얻은 사람)·목자라는 지도자, 대행자들이다. 그들은 교단이라는 조직, 경전 등의 난해한 논리를 갖고, 운영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상체로서 ‘서열(rank)’이 생겨서 수직적인 질서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반면에 역사는 동 시대, 동일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의 구성원이다.


비록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신분과 계급, 집단 간의 차별이 심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차별이 적고, 협력자 관계이다. 따라서 수평적인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명분이 있고, 환경도 갖추었다.

역사학자의 눈으로 보면 역사는 비록 상호갈등처럼 보이는 삶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보완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효율적인 기구이다.

[해설 관련 서적]

(참고저서) 윤명철 저서, 역사는 진보하는가(1992), 윤명철 해양논문선집 8권 중 6권 역사활동과 사관의 이해(2012),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등

(참고논문) 운명철 논문, 한국역사학, 과거를 안고 미래로-신사학을 제안하며(2011), 「무교(巫敎)에서 본 생명관-‘무교사관’의 설정을 위한 시도」(2014), 「고조선 사상의 탐구와 모색」(2016), 「동아시아 풍류와 ‘Eurasia Flow’」(2020), 「한민족 문화의 ‘원(原)자아’와 문명모델 탐구」(2021) 등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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