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보수의 아이콘'에서 '배신자 낙인 찍힌' 김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

[집중분석]'보수의 아이콘'에서 '배신자 낙인 찍힌' 김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

  • 기자명 김영일 기자
  • 입력 2024.01.0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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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더퍼블릭=김영일 기자] 으레 총선 때만 되면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화두가 있다. ‘세대교체론’이다. 여야 정당들은 4년 마다 치러지는 총선이 다가오면 혁신 또는 쇄신이란 명분을 앞세워 당내 중진 세력을 상대적으로 젊은 세력으로 ‘물갈이’ 한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보기에 따라 또 듣기에 따라선 그럴 듯 해보이지만, 문제는 4년 마다 물갈이를 통해 많은 초선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 입성함에도 후진적이라 비판받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여느 총선과 다름없이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도 여야 각 정당에서 세대교체론이 불거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여야 ‘올드보이(Old Boy)’들의 귀환이 가시화되는 특이점도 연출되고 있다.

국회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전남 진도 출마에 나서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전북 전주병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종걸 전 민주당 의원 역시 서울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에선 ‘피닉제’ 이인제 전 의원이 충남 논산에서 7선 도전에 나서며, ‘무대(무성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도 부산 중‧영도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여야 올드보이들의 귀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은데, 특히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그간 내부총질만 해대던 인사들과 한 패라는 ‘오해와 편견’ 탓에 보수층으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더퍼블릭>이 ‘정치인 김무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짚어봤다.

오해와 편견① 이준석‧유승민‧장성철 배후가 김무성?

김무성 전 대표는 오는 4월 10일 예정된 제22대 총선에 부산 중‧영도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당초 부산 중‧영도는 김무성 전 대표의 지역구였는데, 지난 21대 총선에서 불출마함에 따라 미래통합당 황보승희 의원이 공천을 받고 당선됐으나, 지난해 6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3일 MBN 유튜브 방송 ‘나는 정치인이다’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스스로 더 이상 (정치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불출마를 하게 됐는데, 우리 지역(부산 중‧영도)에 좀 문제가 있어서 그 의원(황보승희)이 다음에 불출마를 하겠다고 선언했다”면서 “그 자리가 비게 되다 보니까, 지금 주민들이 저보고 이제 다시 출마를 해달라고 하는 그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래서 몇 번 거절하고 외면하기도 하고 했는데, 마음이 조금 바뀌어져 가고 있다”며,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처럼 김 전 대표는 오는 4월 총선 출마 여부를 고심하고 있으나, 보수우파 성향의 유튜브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김 전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이는 김 전 대표가 구태로 인식되는 ‘올드보이’란 점도 있지만, 이준석‧유승민‧장성철 등 이른바 ‘보수참칭’ 정치인이라 비판받는 인사들 배후에 김 전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는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

이준석 씨는 그간 정부여당을 향해 내부총질만 해대다 지난달 27일 신당 창당을 위해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이준석 신당 창당이 완료되면 그쪽으로 당적을 옮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진 국민의힘에 남아 내부총질을 해대고 있으며, 과거 김무성 전 대표의 보좌관이었던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라디오 등에 출연해 좌파 인사들보다 더 신랄하게 우파를 공격하는 보수참칭 패널로 지적되고 있다.

김 전 대표가 과거 이들과 함께 바른정당을 창당했다보니, 김 전 대표가 이들 배후에서 상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보수우파 진영 일각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는 지난 2일 TV조선 유튜브 ‘강펀치’에 출연해 ‘지금 (유튜브 방송)댓글을 보면 대표님이 이준석 전 대표를 지원하신다 이렇게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오늘 확실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한다’는 진행자의 언급에 “아닌 거를 가지고 막 이렇게 왜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저도 이야기를 전해 듣기를 유승민‧이준석 배후에 김무성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준석은 지난 전당대회 때 한 번 만난 이후로 전화 한 통 한 사실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 전 의원에 대해선 “그 사람은 원래 전화통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다. 잘 아시지 않느냐”며 “그래서 몇 년 동안 전화통화 한 번 한 일이 없는 사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성철 소장과 관련해서는 “장성철이가 제 보좌관 하던 사람인데, 윤석열 대통령을 대선후보가 되기 전부터 비판을 많이 했지 않느냐”며 “장성철은 제 밑에 있다가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 그만두게 됐고, 그만두고 유튜브에 나와 저를 갖다가 비판을 한다. (보좌관 그만두고)지금까지 한 번 얼굴 본 일이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저한테 (이준석‧유승민‧장성철 배후라고)뒤집어 씌우는데, 이걸 제가 어디 가서 호소하느냐”며 “(배후론이)하도 기가 막혀서 술자리에서 변호사들에게 ‘내가 수임료 줄 수는 없는데, 너 내 거 (소송)해가지고 거기서 네가 받아라.’ 오죽했으면 그런 이야기를 했겠느냐”고 억울해했다.

이어 “(배후론을 제기하는)극우 유튜버들이 너무 심하다. 정말 그것 하나하나 가지고 이야기하면 제가 그 논쟁에서 다 이길 수 있지만, ‘아이고 마~참아야 되겠다’ 해서 참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본지>가 김 전 대표를 잘 아는 주변 지인들을 취재해 봐도 김 전 대표가 보수참칭 정치인들의 배후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입을 모은다.

오해와 편견② 20대 총선…“수감된 이후에야 김무성 대표가 면담‧통화 요청한 사실 알아”

이처럼 김무성 전 대표는 이준석‧유승민‧장성철 등 보수참칭 정치인이라 비판받은 인사들의 ‘배후론’에 명확하게 선을 그었는데, 김 전 대표에게는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청와대와의 불화로 공천파동이 연출된데 따른 이른바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뒤따른다.

김 전 대표가 2016년 3월 24일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건 맞다. 하지만 당시 당 대표 직인은 당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특히 공천파동이 불거진 건 당시 ‘박근혜’ 이름 팔아 호가호위했던 친박 인사들의 ‘인(人)의 장막’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앙일보>를 통해 연재되는 ‘박근혜 회고록’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5일 공개된 ‘유승민 그리 키울 일 아니었다…2016년은 정말 되는 게 없었다’ 제하의 회고록에서 “20대 총선을 생각하면 뼈아픈 후회가 남는다. (중략)나중에 알고 보니 20대 총선 공천 때 내 이름을 빌려 호가호위하는 일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친박계 인사들이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대통령 뜻이니 그 지역에 출마하지 말라. 우리가 당신 뒷조사 자료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위협하는 녹취록이 공개된 적도 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기가 찼다. 누구를 협박하는 식의 정치는 나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얼마나 벌어졌을까. 그런데도 내가 몰랐다는 게 변명은 될 수 없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나는 총선 공천 때면 으레 당에 시끄러운 일이 많이 생기는 법이지만 새누리당이 잘 극복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당의 상황은 내 바람과는 정반대로 돌아갔다”면서 “유승민 의원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더니, 결국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에 대표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사건까지 터졌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그 무렵 김무성 대표는 나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고, 전화 통화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 김 대표가 면담이나 통화를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김 대표가 그랬다는 얘기는 나중에 내가 수감된 이후에 전해들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제야 나는 도대체 어떤 영문으로 김 대표와 연결이 안 됐는지 몰라 화가 났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고 덧붙였다.

공천갈등이 최악으로 치닫을 무렵, 김 전 대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거나,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 국면을 회상해보면, 친박(친박근혜계)은 물론 ▶진박(진실한 친박) ▶원박(원조친박) ▶범박(범친박) ▶신박(신친박) ▶복박(돌아온 친박) 등에 이어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하는 등 박근혜 이름 팔아 호가호위하던 인사들이 김 전 대표의 면담 및 통화 요청을 중간에서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대통령도 회고록에서 지적했듯, 박 전 대통령도 모르는 사이에 박근혜라는 이름 팔아 호가호위하던 인사들이 누구를 협박하는 식으로 공천을 하다 보니, 20대 총선은 야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됐음에도 새누리당의 패배로 귀결됐다.

당시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는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표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지만, 박근혜 이름 팔아 호가호위했던 인사들의 책임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오해와 편견③-㊤ 박근혜와의 관계…朴 “지나고 나면 아쉬운 일 참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회고록를 통해 김무성 전 대표와의 관계설정에 대해선 아쉬움을 내비치면서도,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선 ‘관계가 파탄났다’며 분명한 온도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2023년 11월 14일 공개된 ‘그날 밤, 연락 끊은 유승민…그와의 관계 그때 파탄 났다’ 제목의 회고록에서, 박 전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는 (2014년)여권의 최대 현안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에 발 벗고 나섰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직접 대표 발의했고, 인기 없는 개혁을 주저하는 여당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요지부동인 야당과도 타협안을 만들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안다. 그렇게 김 대표와의 관계는 개선되나 싶었는데, 또다시 뜻하지 않은 악재가 생겼다”며 “2014년 12월 19일 대선 승리 2주년 기념으로 청와대에서 일부 친박계 중진 의원들과 비공개로 만찬을 했는데, 여기에 김 대표가 빠진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실 그날 만찬은 내가 제안한 게 아니고, 당의 한 인사가 먼저 건의했던 것인데, 그분은 나와 김 대표의 관계가 껄끄럽다고 생각해 김 대표를 만찬 모임에 부르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냥 조용히 밥만 먹고 끝났으면 별일도 아니었을 일인데, 나중에 참석자 중 한 명이 만찬을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고 했다.

이어 “원래 그 무렵 나는 김 대표를 따로 한 번 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언론에 ‘김 대표를 뺀 만찬’이 보도되면서 모양이 우습게 됐다. 이제 와서 김 대표에게 만나자고 연락하면 오해받기 딱 좋을 것 같았다”면서 “일이 그렇게 되면서 김 대표와의 회동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좀 어색하더라도 김 대표를 만나는 게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일이 참 많다”고 소회했다.

2015년 12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노동개혁 법안의 연내 처리, 경제활성화 법안 및 테러방지법안의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를 당부했다.
2015년 12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노동개혁 법안의 연내 처리, 경제활성화 법안 및 테러방지법안의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를 당부했다.

오해와 편견③-㊦ 공무원연금개혁 발 벗고 나선 김무성…관계 파탄 낸 유승민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서는 “유승민 의원은 정치권의 인연으로 따지면 오래된 사이다. 내가 한나라당 대표로 2004년 총선을 치를 때 공천을 직접 챙겼던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유 의원”이라며 “강재섭 전 대표가 내게 전화를 해서 ‘이회창 전 총재가 자신이 아끼던 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의 비례대표 공천을 부탁한다’고 전해줬고, 당시 나는 유 의원이 누군지 전혀 몰랐지만 이회창 전 총재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유 의원의 비례대표 순번을 안정권 이내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유 의원은 내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나의 요청으로 2005년 10월 대구 동을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며 “당시 재선거 때 열린우리당의 상대 후보(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가 워낙 거물이라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선거를 도왔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랬던 유 의원은 언제부턴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중략)나는 아직도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른다. (중략)유 의원은 201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공약가계부를 더는 지킬 수 없다.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 부족은 22.2조원’이라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나는 연설 장면을 TV중계로 직접 봤는데 그의 발언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일반 의원이면 자기 생각을 강조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원내대표는 당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 의원과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파탄이 난 건 공무원연금개혁 때였다. (중략)2015년 5월 국회에서 만들어 온 협상안을 보니 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래서 내가 공개적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협상안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가 ‘협상이란 게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게 최선’이라고 설명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면서 “나도 국회 생활을 오래 해봤기 때문에 야당이 끝까지 협조를 안 해주면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안다. 여당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았을 테니 ‘애 많이 쓰셨다’고 격려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데 공무원연금법 개정 합의의 부대조건으로 국회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대통령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권을 갖도록 국회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국회법을 고쳐버리면 국회가 대통령과 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겠다는 얘기 아닌가”라며 “나는 몹시 화가 났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합의를 해준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나아가 “결국 나는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새벽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에 언론 보도까지 나왔지만 알고 보니 당시 야당 측이 ‘이런 사안은 대통령이 잠자는 한밤중에 해치워 버려야 한다’고 제안해 여당이 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전개를 보고 나는 더는 유승민 원내대표와 함께 일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함께 이른바 ‘배신의 정치’를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내 발언 이후 새누리당에서도 유 원내대표가 더는 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돼 그는 7월 8일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퇴 회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헌법 얘기를 꺼낸 게 참 뜬금없다고 생각했다”면서 “헌법 정신으로 따지자면 자신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이야말로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내용 아니었나”라고 덧붙였다.

2005년 1월 11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신임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직자와 손을 잡고 있다. (좌측부터)유승민 비서실장,박근혜 대표,김무성 사무총장,전여옥 대변인.
2005년 1월 11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신임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당직자와 손을 잡고 있다. (좌측부터)유승민 비서실장, 박근혜 대표, 김무성 사무총장, 전여옥 대변인.

오해와 편견④ 탄핵…누가 배신자인가?

김무성 전 대표에겐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는 낙인도 찍혀 있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는 앞서 언급한 TV조선 유튜브 ‘강펀치’에서 “(탄핵 정국 당시)광화문이 마비가 됐지 않느냐. 그때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하야’, 하나는 ‘탄핵’이었다”며 “저는 국가는 헌법에 의해서 운영이 돼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럴 때에 탄핵 절차를 밟으라고 (헌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당장 하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해서 탄핵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그것(탄핵 절차는)은 우리나라 등 전 세계 4개 나라밖에 없는 이중 절차로,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되더라도 헌법재판소가서 한 번 더 거를 수 있다”며 “광화문이 언제 폭발하지 몰랐기 때문에 쿨다운 시켜야 됐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는지 여부를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것이었고, 또 당시 광화문에는 100만 인파가 모이는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 직전이었기 때문에 이를 자제시키기 위해서라도 탄핵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 전 대표는 “그런데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 바친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최측근 의원들(친박계)은 모여가지고 결론을 내린 끝에 하야를 권유했다. 누가 배신자입니까?”고 따져 물었다.

실제 당시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인사들 사이에선 박 전 대통령에게 질서 있는 퇴진(하야)을 권유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하야하게 되면 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소명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퇴진하는 것인데, 친박계 사이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유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는 것.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헌재에서 한 번 더 판단 받을 수 있게끔, 그리고 국민적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탄핵 절차를 밟았던 김 전 대표. 박근혜 이름 팔아 호가호위했으나 소명 기회조차도 갖지 못하게 퇴진을 권유했던 친박 인사들. 누가 배신자인가?

오해와 편견⑤ 노룩 패스(No-Look Pass)…“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갑질하지 않는 사람인 것 잘 알아”

김무성 전 대표에겐 정치적 오해와 편견 외에도 ‘노룩패스’와 ‘올드보이’ 등 개인적 오해와 편견도 존재한다.

2017년 5월 23일 당시 김무성 전 대표가 공항에 마중 나온 비서관에게 얼굴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퀴 달린 캐리어를 밀어 보내면서 이른바 ‘노룩 패스(No-Look Pass)’ 논란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김 전 대표에게는 아랫사람과 눈도 안 마주치며 함부로 대하는 ‘갑질’ 이미지가 각인됐는데, 김 전 대표의 캐리어를 직접 받은 비서관은 2021년 2월 MBN 정치토크쇼 ‘판도라’에 출연해 갑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당 비서관은 “그날(2017년 5월 23일) 김무성 전 대표가 공항에서 귀국을 하는데, 원활하게 (언론과)인터뷰하게끔 입국장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면서 “(김 전 대표가 입국장 문에서 나오기 직전 나와)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가방(캐리어)을 밀어주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오히려 대표님과 저의 철저한 콤비플레이, 세트플레이가 이뤄진 거 아닌가 생각한다”며 “(당시 캐리어를 받은)당사자로서 완벽한 진실은 이것(콤비플레이)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서관의 이러한 해명에, 김 전 대표는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갑질하지 않는 사람인 것을 잘 안다”고 했다.

실제 노룩패스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김 전 대표가 갑질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면, 해당 비서관이 논란이 벌어진 4년 뒤인 2021년에도 국회의원도 아니었던 김 전 대표를 보좌하거나 해명에 나섰을까 하는 물음표가 뒤따른다.

아울러 김 전 대표는 2010년 한나라당 시절, 조윤선 의원과 함께 국회 보좌진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국회의원 1위로 꼽힌바 있다.

오해와 편견⑥ 올드보이…정치력 발휘 통한 여야 간 중재

총선 때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여의도 정치권에는 세대교체 바람이 분다. 제22대 총선도 다르지 않다. 고령‧다선의 올드보이인 김무성 전 대표의 총선 출마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세대교체를 통해 초선 국회의원들이 여의도에 입성한다고 해도 후진적인 정치권 행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특히 작금의 국회 상황은 더 그렇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은 155명(52%)으로 절반을 넘어섰지만,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167석의 거대 야당이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의회독재, 그리고 이에 따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야당이지만 167석의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양보할 건 양보하고, 소수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타협할 건 타협하는 그런 상생의 정치를 국민들께 선보여야 하는데, 물밑에서 정치력을 발휘해 중재를 해야 할 중진 인사들이 총선 때만 되면 물갈이되다 보니,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013년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막후 협상을 통해 사상 최장기 철도파업을 해결한 사례, 20대 국회 막바지 김무성 전 대표의 적극적인 중재로 여야가 형제복지원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근거법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을 합의처리 한 사례 등과 같이 22대 국회에선 노년‧장년‧청년이 조화를 이뤄 실종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연합뉴스>

더퍼블릭 / 김영일 기자 kill0127@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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