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공동칼럼] 고조되는 의료 불신... 수술실 CCTV 도입 논의, 이제는 종지부 찍어야

[청년 공동칼럼] 고조되는 의료 불신... 수술실 CCTV 도입 논의, 이제는 종지부 찍어야

  • 기자명 심정우
  • 입력 2021.08.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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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일이 이미 잘못된 뒤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거나 너무 늦음을 비판하는 속담이다.

 

2018년 5월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의사가 아닌 의료기기 영업 사원이 대리 수술을 해 환자가 뇌사 판정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처음으로 병원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됐다. 비단 대리 수술뿐만 아니라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의를 바꾸는 '유령수술', 수술실 내 의료진들의 근무 태만, 성추행 및 각종 의료사고가 이슈로 떠올랐다.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유령수술'은 64개월간 112건이 적발됐지만 행정처분은 4년간 44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더욱이 처분을 받은 의료인이 누구인지, 의료기관이 어디인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더 이상 국민들은 정부와 의료계의 말만을 믿을 수 없다며 직접 확인 가능한 수술실 내부 CCTV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의료계와 환자 간의 무너진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환자들의 불안함을 덜고자 2015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병원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번번이 의료계의 반대에 무산됐다. 여전히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찬반 논란은 뜨겁다. 단순한 의료계의 반대일까? 아니면 법안이 문제일까? 그동안 발의되었던 법안에는 어떤 핵심 내용이 있었고 어떤 쟁점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다.

 

CCTV 설치 의무 여부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법 개정 법률안 중 신현영 의원의 안은 CCTV 설치를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수술실 CCTV 설치는 법률로써 의무화하는 것이 타당하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을 경우 의료기관의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므로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려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가 2020년 5월에 도내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추진한 ‘CCTV 설치 지원 사업’은 도가 12개의 병원을 선정하여 설치비용 3000만 원을 전액 지원하는 사업임에도 사실상 무산되었다. 총 310여 곳의 민간병원 중 2개 병원만이 사업에 참여하는 데 그쳤는데, 다수 병원의 경영진에서 관심을 보였지만 내부 의료진의 반발이 강했기 때문이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2020년 7월 조사에 따르면 1722개 의료기관 중 수술실 내부에 CCTV가 설치돼 있는 기관은 14%에 그쳤으며, 향후 CCTV 설치에 긍정적 의사를 표한 기관 역시 15%에 불과했다. 이는 약 70%에 달하는 의료기관들이 수술실 CCTV 설치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임을 방증하는 지표이다.

 

CCTV 촬영 동의 요건

촬영 의무 요건과 관련해서는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 측의 요청으로 제한하고, 의료진의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촬영 거부를 불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의료인의 동의를 촬영 요건으로 할 경우 환자가 원하더라도 수술에 참여하는 개별 의료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촬영을 할 수가 없게 되는데, 이는 설치를 의무화한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를 위시한 의료집단 다수가 수술실 CCTV 설치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촬영 동의권을 의료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자가당착적 발상이다. 더욱이 이미 수술실 내부에 CCTV를 갖추고 있는 의료기관에서조차도 수술 영상 촬영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 산하의 일산병원에는 수술실 내부에 CCTV 22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녹화된 영상은 한 건도 없다. 이는 관련 법규가 없어 수술 영상을 촬영하고 보존할 의무가 없는 데다가 의사들이 수술 촬영에 부정적이기 때문인데, 의료진에게 촬영 동의권(사실상의 거부권)을 쥐여줬을 때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따라서 안규백 의원 대표 발의안과같이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의 동의로 촬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

 

의료진의 기본권 보장 vs 환자의 기본권 강화

이때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의료진의 동의 없이 수술 촬영을 강제하는 것은 감시와 다를 바 없기에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보의 불균형을 간과한 주장이자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이다. 환자 또한 의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인권을 가진 계약의 대등한 당사자인데, 수술실에서의 환자는 계약의 이행 과정을 알 수 없다. 환자는 전적으로 의사를 신뢰하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특수성 속에서 의료계의 비윤리적인 행태와 파렴치한 범죄가 지속돼왔다는 점이다. 의료 무면허자의 대리 수술은 상당히 오랜 기간 조직적으로 행해져 온 바, 2014년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서는 누적 피해자가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수술실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과 이윤만을 추구하며 의료윤리를 망각한 업무 태만으로 인한 의료사고 역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성범죄의 경우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5년(2015~2019년)간 613명의 의사가 적발되었는데, 이 중에는 수술실, 내시경실 등에서 마취되어 불가항력의 상태에 놓인 환자를 대상으로 자행된 범행들도 여럿 보도되었다. 더군다나 범죄를 저지른 다수의 의사들이 여전히 의료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한 의사집단은 수년째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일부의 일탈로 선을 그으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환자-의사 관계의 특수성에 기인한 수술실 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대책을 제안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의료집단 내부에서 강력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CCTV 설치 및 촬영 의무화가 의료진의 인권.직업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더불어 우리 헌법은 제10조부터 제37조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기본권을 강조하고 있는 동시에, 그 기본권이 사회의 질서유지나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음도 천명하고 있다. 비견한 예로 어린이집 CCTV 설치를 들 수 있다. 미취학 아동들이 자기표현에 서투르다는 특수성으로부터 어린이집에서 패륜적 만행들이 벌어졌고, 국민적 분노와 불신이 임계치를 넘어 CCTV 촬영이라는 대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수술실 CCTV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 이상이 CCTV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하며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노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CCTV 설치와 촬영 의무 요건은 환자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영상 보안 문제

한편 의료계에서 수술실 CCTV를 반대하며 내세우는 또 다른 논거로는 영상 보안 문제가 있다. 수술 촬영 영상은 환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이것이 외부로 유출되었을 때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반대 논거로 타당하지 않다. 영상 유출의 위험성을 감수하고도 수술실 안에서의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여론이다.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의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시범운영 결과를 보면, 무자격자 대리 수술 이슈를 촉발시킨 외과 수술의 경우 촬영 동의 비율이 53%(2018년 10월)에서 73%(2019년 2월)까지 올라갔다. 이는 환자가 수술실 CCTV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보다 무자격자 대리 수술이나 성범죄 등 불법행위에 대한 우려가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 모두 CCTV 촬영 시 환자 측의 동의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환자의 사생활 침해 피해가 극도로 우려된다면, CCTV 촬영 영상의 ‘보안 조치’, ‘보관 기관’, ‘열람 요건’ 등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사안이지 무작정 CCTV 설치와 촬영 자체를 반대하고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의료계는 국민들의 엄중한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저 관성에 이끌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 쟁점들에 대한 대책이나 보완 없이는 앞으로도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려면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뿐만 아니라 관련 법안들도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CCTV 영상 유출 관련 처벌법, 보안법, 의료사고 관련 분쟁법 등이다. 가장 우려가 되는 CCTV 영상의 보관 및 유출에 대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영상 보관 기간과 영상 보관 기술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만일 영상이 유출된다면 그에 따른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우리는 이미 많은 환자의 권리를 잃었다. 여러 의원들이 수술실 내부 CCTV 설치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실제로 통과된 법안은 하나도 없었다. 많은 법안들이 제시됐어도 국회에 오래 계류된 배경에는 의사협회의 막강한 반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료사고 감정이 이뤄진다. 현재는 사고에 대해 당사자의 진술(구두 또는 서면)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과관계의 파악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술실 내부에 CCTV가 있다면,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CCTV가 사고의 인과관계 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의료사고가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의료사고 보상사업’에 따라 비용의 일부가 지원된다. 따라서 의료진들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환자만을 위한 법안이 아닌 환자와 의료계 모두를 위한 법안임을 알아야 한다.

 

국회는 환자들의 피해와 무너진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루빨리 수술실 내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법안을 발의하기보다는 법안의 실효성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지지부진하지 말고 법안을 개선해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굿네이션스 자료제공>

기자 심정우

 

공동작성 이재호, 고보경, 권새연, 김도훈, 김혜은, 유미영

 

더퍼블릭 / 심정우 goodnations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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