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3부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 기사승인 : 2022-02-02 15: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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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적, 역사문화적 이해와 한민족연관성 3부(22년 1월 31일자)...우크라이나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는 고대 한민족 문화와 연관이 깊다.
▲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3부 (출처=유튜브)

 

[더퍼블릭 =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학교 명예교수가 유튜브 ‘역사대학’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 역사, 문화적 이해와 한민족 연관성’ 3부를 통해, "우크라이나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는 고대 한민족 문화와 연관이 깊다"라는 내용을 학문적 관점에서 역사학적 해설을 담아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을 분석해 본다.


[윤명철 교수의 역사대학 2022년 1월 31일자 주요 내용]

한민족은 언젠가는 통일을 완수해야하는 역사적인 책무가 있다. 통일을 실현시키기위한 다양한 작업 가운데 하나는 통일국가의 구호를 정하는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의 어원과 의미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커다란 한국’이라는 의미, khan국(knate) 즉 커다랗고 하늘에 선택을 받은 특별한 나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 한민족 국가는 어떤 국호를 선택해야 할까?

‘이름(名, 號, name)’이란 존재의 의미 및 가치와 직결된다. 즉 정체성의 핵심으로서 기호이고 지표이다. 국호는 국가의 존재이유와 건국한 집단의 세계관, 역사관, 발전목표 등을 고려해 창조했다. 또한 자연환경,신앙, 종교, 민속, 역사상을 반영했다. 우리처럼 오랫동안 역사공동체를 이루어온 집단에게 국호는 국가의 정통성 및 계승성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후발국가들은 선발국가 또는 모국가의 국명을 차용 또는 변용시킨다. ‘조선계승성’·‘고려계승성’·‘한계승성’ 등이 그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국호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려주는 증거들은 많다. 문자가 없었을 때 국호를 제정하거나, 변경할 때는 ‘원음’과 ‘원뜻’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고구려에서 고려로 개정, 사로국 등에서 신라로 개정, 가라(가락)제국들이 가야로 정착할 때 등이다. 부여는 ‘홀본부여’를 비롯하여 ‘동부여’ ‘북부여’다시 ‘동부여’ ‘갈사부여’ 등을 사용했고, 백제는 사비성으로 천도한 후 ‘남부여’를 국호로 사용했다.

우리 역사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국호는 조선·한·고구려 등인데, 조선 3번, 고(구)려 3번, 한국은 3번이다. 그 밖에 부여(부여), 삼한의 소국들(78국), 신라, 백제, 동예, 옥저, 두막루(부여 멸망 후의 복국, 달말루 등의 명칭), 발해(震, 振) 등이 있고, 기타 동일한 언어계통인 선비 계통, 거란 계통, 말갈 계통 국가들의 국호도 있다.

‘조선’은 최초의 민족국가의 이름이었으므로, 이후 계승되었다. <제왕운기>는 ‘故屍羅 高禮 南北沃沮 東北扶餘 穢與貊皆檀君之壽也.’ 라고 하여 신라 고구려 등의 국가들은 단군의 자손임을 칭했다고 기술하였다. <漢四郡及列國紀>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 또 『후한서』 동이열전 예전에는 “濊及沃沮 句驪本皆朝鮮之地也.”라는 기록이 있다. 훗날 이성계와 성리학자들이 주도해서 고려를 쓰러뜨리고, 새나라를 건국할 때 국호를 ‘조선’으로 제정했다.

고구려는 ‘구려(句麗)’ 및 ‘고리(槀離)’에서 나왔지만, 광개토태왕 또는 장수왕 시대에 ‘고려’라는 이름을 선택하였고, 멸망했을 때는 ‘소고구려’ 라고 했다. 발해는 ‘고려’라고 칭했고, 궁예는 ‘후고구려’를 왕건은 ‘고려’를 국명으로 사용하였다(윤명철). 그리고 북한에서는 ‘고려연방’이라는 용어를 제안했었다.

‘한(韓)’ 계승성도 강하게 나타났다.『삼국사기』에는 김유신 등이 ‘일통삼한’, ‘삼한일가’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삼한의 존재와 역할 등은『삼국지』·『후한서』·『진서』 등에 있다. 414년에 건립한 광개토태왕릉비에도 ‘韓’이라는 용어가 11번 등장하였다. ‘삼한’은 삼국유사』에 25회 정도, 『삼국사기』에 약 7회 정도 등장한다.(황태현) 8세기 이래로 일본 사서에서는 ‘한(韓)’을 대륙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용했고 선호했다.(강창일) 1870년대 전후한 ‘조선정벌론’을 ‘정한론’이라고 불렀다. 이후 일본공문서나 일본신문에서도 ‘한병’ 등으로 불렀다.

1897년 대한제국으로 개명할 때 고종은 “우리나라는 곧 三韓의 땅인데,~지금 천하의 이름을 ‘大韓’이라고 정하는 것은 불가한 것이 아니다. ~천하는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다.“(고종실록)고 말했다. 또 의정(총리대신의 새 칭호)은 “우리나라는 옛날에 기자가 봉해졌던 ‘조선’이란 이름을 따라 이를 국호로 삼았는데 이는 처음부터 합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대한이라는 새국호는 ‘기자정통론’을 부정한 자주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제 3대 통감이며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합병 직전에 “한국을 개칭하여 조선으로 할 것”으로 명시했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국치일에 순종이 발표한 칙령 제 318조에는 “한국의 국호는 개정하여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한다”라고 하였다.

식민지 시기에는 ‘대한’이나 ‘한국’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수 없었다. 오로지 만주나 지하의 독립단체들만 사용했다. 최초의 독립선언서도 ‘대한독립 선언서’였고, 1919년 4월 10일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그래서 ‘대한독립단’· ‘대한독립군’ 등 ‘대한’ 또는 ‘한’을 사용했다. 이어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1948년 7월 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가결하였다. 반면에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선포했다.

[해설 관련 서적]

(참고문헌)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상), 민우사, 1947. 신채호, (원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비봉출판사, 2006. 윤명철, 『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 2005. 『우리 민족 다시본다』,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황태연,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 2016.

(논문) 윤명철, 「고구려의 고조선 계승성에 관한 연구 1」, 2002. 「단군신화와 고구려 건국신화가 지닌 정체성(identity)탐구」, 2002. 「고구려의 고조선 계승성에 관한 연구 2』, 『단군학연구』, 14호, 2006. 이완범, 「국호 ‘대한민국’의 명명」, 『황해문화』, 2008. 이충우, 「국호 ‘대한민국’」, 2001.2.
 


윤명철 교수 / ymc04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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