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역대급 실적’ 기록한 보험업계와 ‘상생’ 외치는 당국...관치금융인가, 당연한 의무인가

[설 특집] ‘역대급 실적’ 기록한 보험업계와 ‘상생’ 외치는 당국...관치금융인가, 당연한 의무인가

  • 기자명 신한나 기자
  • 입력 2024.02.1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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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국내 보험사들이 성과급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해 보험업계는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지만 지난해부터 금융당국과 정부가 ‘상생금융’을 외치고 있어 성과급 지급 규모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금융당국에서 ‘과도한 성과급이나 배당에 유의하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만큼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직원에게 성과급 보따리를 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생금융 외치는 정부와 금융당국, 그 배경은?

▲ 보험업계 (사진제공=연합뉴스)
▲ 보험업계 (사진제공=연합뉴스)

[더퍼블릭=신한나 기자] 지난해 경제침체로 인해 산업계 전반이 부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은행권이 눈에 띄는 호실적을 기록한 데에는 ‘고금리’가 한 몫 했다.

소상공인들은 어려운 현실에 은행을 찾았고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고금리로 인해 이자가 올라가면서 은행만 배를 불리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에 지난해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고 말했다.

이후 11월 1일에도 윤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 이런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며 은행권에 대한 비판을 더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상생금융’이라는 키워드가 금융권에 떠올랐다.

상생금융은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의 고통을 분담하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융기업의 경우 단순히 사기업의 의미를 넘어 공공적 성격이 강한 만큼 기업 존속의 목적을 ‘이익 창출’에만 둘 것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와의 ‘상생’을 고려하는 경영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보험업계 간담회에서 “보험의 근간은 계약자간 상부상조 정신과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간 신뢰에 있다”라며 “보험사는 신뢰받는 동행자로 계약자 어려움을 덜기 위해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보험업계에도 상생금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생명·손해보험협회는 ‘보험업권 상생방안’을 내며 본격적으로 상생금융에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금리·고물가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보험계약자의 이자부담 경감을 위해 취약계층에 대한 보험계약대출 이자 납입유예 제도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자동차보험료 등을 인하하는 등의 움직임에 나섰다.

성과급 규모 대폭 줄인 은행권...덩달아 지급 규모 고심하는 보험업권

지난 1월 16일 금융감독원은 보험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과도한 성과급과 배당에 유의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지난해 IFRS17이 첫 도입된 이후 실적에서 큰 변화를 겪은 만큼 제도 안착까지 선제적으로 변동성을 유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보험사는 상생금융 확대 압박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앞서 시중은행도 상생금융 확대 분위기 속에 올해 성과급 규모를 줄였다.

주요 시중은행은 올해 임금 인상률을 일반직 기준 2%로 결정하며 지난해보다 1%p 낮추기로 결정했다.

경영 성과급도 전반적으로 축소됐다. 5대 은행 중 가장 늦게 임단협 협상을 진행한 하나은행은 이익 연동 특별성과급으로 기본급의 280%를 지급하기로 했다. 2022년 임단협에서 이익 연동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350%를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성과급 규모가 줄었다.

국민은행은 통상임금의 2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2022년 임단협에서 통상임금의 280%에 더해 현금 340만원까지 얹어주던 데서 후퇴했다.

신한은행(기본급 361%→기본급 281%)과 NH농협은행(통상임금의 400%+200만 원→통상임금의 200%+300만 원)도 전년보다 성과급을 줄였다.

우리은행의 경우 기본급의 180%대에서 잠정 합의했으나 정확한 규모를 확정 짓지 못했다. 역시 1년 전 기본급의 292.6%를 지급했던 것보다는 조건이 나빠졌다.

▲ 사진제공=연합뉴스
▲ 사진제공=연합뉴스

이에 보험업권도 덩달아 성과급 지급 규모를 고심하는 분위기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연봉의 60%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가운데 이달 지급하는 올해 성과급은 작년 수준과 비슷하거나 많게는 연봉의 100% 규모의 지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봉 4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던 DB손해보험도 올해 3월 말쯤 성과급 지급이 예정된 가운데 작년 수준의 성과급이 고려되고 있다. 현대해상도 3월 중 지급할 계획이나 지급 수준은 예년보다 적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보험업계가 지난해 3분기까지 워낙 높은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예년대비 높은 성과급을 취하는 곳도 존재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성과급을 지급한 삼성화재는 임직원에게 연봉의 50% 수준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전년도 성과급은 연봉의 47% 수준으로 당시보다 소폭 오른 수준이다.

삼성생명도 직원들에게 전년(연봉의 23%)보다 오른 연봉의 29%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삼성화재는 “손해율 관리와 사고 감소 등으로 손익이 증가해 이를 성과 보상 차원에서 분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성과급은 실적에 연동되는 것으로 지난해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성과급을 전년보다 줄일 이유는 없다”면서도 “다만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당국의 ‘상생금융’ 기조에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험사는 주주 이익 확대도 망설이고 있다. 금융당국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에서 배당금으로 나가는 비율)을 확 끌어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보험사 배당성향은 2019년 42.7%에서 2021년 24.6%까지 떨어졌다. 증권가에서는 보험사 배당성향이 다소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익 증가에도 배당을 확대하지 않으면 주주들이 반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금융당국의 성과급 압박...지나친 간섭이라는 지적도?

▲ 금융감독원 (사진제공=연합뉴스)
▲ 금융감독원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 회의에서 “단기성과에 치중해 남는 재원을 배당이나 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사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자동차보험료 인하 등 상생금융에 적극 나섰지만 금융당국이 또 성과급을 문제삼자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성과급 규모는 사내 재원 범위도 고려하고 보험업무 특성 등을 감안해 결정되는데 이익 분배 문제에 당국 입김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번에 나타낸 최대 실적에는 회계제도 변경의 효과가 있었던 만큼 성과급에 대해 당국 눈치를 살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금융시장의 자금운용에 개입한다는 관치금융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년간 금융사들이 상생금융 명목으로 갹출한 지원금은 4조5000억원이다. 은행은 2조원, 카드사는 1조5000억원, 보험사는 1조원을 차주 이자 감면, 생활비·임대료 지원, 채무부담 완화, 보험료 인하 등에 쓰기로 했다.

보험사의 경우 생명보험·손해보험 등 보험업계가 각 5000억원씩 상생금융에 투입했다. 생보업계에서는 청년·취약계층 대상 저축성보험과 사회공헌사업 등을, 손보업계는 자동차보험료 인하, 실손보험 인상률 조정 등을 검토 중이다. 내달 주요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료를 2~3% 일제히 인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6일 보험사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원장은 “서민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보험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보험에 관한 국민적 신뢰는 더욱 두터워질 것”이라며 상생금융 주문을 공식화했다. 이어 ”단기 실적을 위한 불건전 영업은 결국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미래의 부담이 된다”며 “건전한 영업관행을 정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압박도 넣었다.

업계에서는 ‘할 만큼 했다’라는 입장이 스멀스멀 제기되고 있다.

한 보험사 근로자는 “금융당국이 하라면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달갑지는 않다”라면서도 “지나치게 ‘상생’을 외치니 근로자 입장에서는 열심히 일할 동기부여가 떨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에 사기 저하도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 보험사의 순이익이 증가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보험사의 순이익이 증가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더퍼블릭 / 신한나 기자 hannaunce@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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